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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기억의 감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by 썬도그 201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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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문학과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여러 영화에서 소개를 하고 인용을 하지만 정작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집에 책이 있지만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라디오에서 소개를 받았는데 책 내용은 별개 아니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먹으면서 자신의 기억을 되집어 보는 내용이 책 내용의 전부라고 하네요. 

이전의 소설들은 사건 사고 중심이고 순차적으로 서술을 했지만 이 책은 자신의 기억을 되집어 보면서 의식과 무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이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대륙은 큰 인기가 있었는데 이는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 때문에 무의식을 탐험하는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프루스트는 20세기 문학에 큰 영향을 줬는데 이 영향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주요 모티브가 됩니다. 


주인공 폴이 마담 프루스트라는 미스테리한 아줌마 집에서 마들렌과 약초를 다린 차를 마시고 기억 찾기 여행을 하는 모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얻었을 듯 하네요


입소문이 워낙 좋아서 개봉한지 1달이 넘어가고 있지만 장기 상영을 하고 있네요. 보고는 싶었지만 제목이 너무 고리타분한 것 같아서 주저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자마자 제 이런 생각은 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아주 경쾌한 발걸음을 보여줍니다. 프랑스 영화는 탐미적이거나 너무 사변적이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영화는 아니고 아멜리아 같이 밝고 경쾌하고 쉬운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히피 청년이 그랜드 캐넌 포스터 앞에 서 있습니다. 장면은 자연스럽게 그 청년의 아내가 아기가 아빠라고 말을 한다면서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뒤로 돌고 무서운 얼굴로 아기를 노려보고 주인공 폴은 꿈에서 꿉니다.

주인공 폴은 매일 같이 악몽을 꿉니다. 그래서 항상 눈이 충혈되어 있고 수면부족에 시달립니다. 

 

폴은 2살 때 엄마 아빠를 잃는 충격 때문에 실어증에 걸립니다. 글은 읽을 줄 알지만 말은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두 이모가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합니다. 폴의 삶은 시계추와 같이 정확합니다. 몇시에 어디에 가는지가 딱 정해져 있는데 이런 다람쥐 챗바퀴 돌듯 하는 하루 일과는 답답스러워 보이지만 폴에게는 그게 삶이라고 받아들이면서 합니다. 

큰 불만 같은 것은 없지만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폴의 고민을 두 이모는 알지 못합니다. 말을 하지 못하고 내색도 잘 하지 않는 착한 청년 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같은 연립주택에 사는  미스테리한 4층 아줌마를 알게 됩니다. 4층에 들어서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집안에 온작 화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게 된 폴, 마담 프루스트는 여러가지 약초와 화초 채소를 키우면서 자신이 직접 제조한 약초를 다린 물을 마시면  희미한 기억이 되살아 난다고 말하죠. 

마담 프루스트는 폴의 고통을 잘 압니다. 폴이 어렸을 때 충격적인 사고로 인해 실어증에 걸린 것이 기억이라는 감옥에 갖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감옥에서 탈출 시켜주기 위해서 마담 프루스트는 기억을 되찾아 보라고 말하죠. 


폴이 엄마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아빠를 저주하는 모습을 잘 알고 있던 마담 프루스트는 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니 엄마는 니 머리속에 있어"

엄마를 만나보지 않겠냐면서 약초를 다린 차와 마들렌을 내놓습니다. 기억이란 수면 밑에 침전 되어 있는데 평상시에는 그 기억이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 기억을 낚아 올려 보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마담 프루스트는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정신 치료를 해줍니다. 그렇다고 마담 프루스트가 정신의학자는 아니라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조언이나 충고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약초로 만든 차를 마시고 기억을 복원 시켜주는 정도만 하죠. 갈등을 하던 폴은 차를 마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희미해진 유년 시절의 기억을 만나게 됩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희미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사실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빛이 바랜 사진처럼 희미하게 처리하고 아이의 기억처럼 기억을 꾸며서 폴의 유년시절을 그립니다.  뮤지컬 형태로 유년 시절을 보여주는데 폴의 유년시절 회상씬이 아주 달콤합니다.


그렇게 매주 목요일 폴은 4층에 찾아가서 자신의 유년 시절의 기억과 만남을 같습니다. 그 기억에는 아름다운 엄마와 아빠가 살아 있었고 그 엄마를 만나면서 폴은 점점 기분이 좋아집니다. 웃지 않던 폴도 기억 속 엄마를 만나자 웃음을 짓습니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폴의 잃어버린 시간(기억)을 찾아서'를 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이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흡입력을 끌어 올리면서 따스한 색감의 사진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특히 심성이 너무 고운 폴의 얼굴만 봐도 안쓰럽고 측은하면서도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을 정도로 주인공의 외모가 너무나도 매력적입니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얼굴로 많은 사연을 표현해야 하는데 폴을 연기한 귀욤 고익스의 귀욤쩌는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잘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의 외모와 그 외모를 이용한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의 홍수로 덮어버려"
기억에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은 우리가 선택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기억은 볼륨을 줄이고 어떤 기억은 볼륨을 크게 하거나  다른 기억으로 덮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담 프루스트는 부모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폴의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을 만난 폴의 눈물을 받아줍니다. 
그리고 폴은 마담 프루스트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다시 기억의 감옥에 갖혀서 변화없고 생기 없는 고통의 삶으로 돌아가버립니다. 


영화는 후반에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면서 끝이 나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는 따스함은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하게 만드네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배우의 연기와 흥미로운 스토리 그리고 음악과 유머가 가득한 웰 메이드 영화입니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어떤 때는 진정제가, 떄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쁜 기억 속에서 고통이 가득한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반대로 소싯적 이야기를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잘나가던 시절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다 기억의 포로라고 할 수 있죠. 좋았던 기억 속에서만 사는 것도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외면하니까요. 반대로 폴과 같이 나쁜 기억 때문에 평생을 그 나쁜 기억에서 피어나는 악취에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또 따른 기억으로 덮어야 비로써 그 기억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기억은 잊는다고 잊어지는 것이 아닌 다른 기억이 그 기억 위에 쓰여질 때 비로서 사라지게 됩니다. 마담 프루스트는 이걸 알고 있었습니다. 

폴의 두 이모처럼 나쁜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만 바라는 소극적인 치료 말고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기억을 잊기 위해서 더 큰 기억 더 많은 기억, 더 좋은 기억을 만들어서 행복한 기억이 나쁜 기억을 덮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멜리아 이후에 최고로 재미있게 본 프랑스 영화입니다.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특히 기억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에게는 강력 추천합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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