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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해무. 홍매 구하려다 다른 물고기 다 놓친 허무한 영화

by 썬도그 201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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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참 많은 영화였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각본을 공동 집필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인기 연극을 다시 각색한 이야기에 대한 묵직함이 있는 영화라서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해무가 낀 바다 위에서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스릴과 인간의 잔혹성과 잔인함을 그려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기대는 다 깨졌습니다.왜 홍매를 그렇게 구해야 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왜 그러셨어요. 왜 왜 왜! 홍매가 뭐라고 홍매가 뭐라고요. 


해무가 끼기 전까지는 좋았다.

해무는 2001년 제 7호 태창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연극을 다시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이 태창호 사건은 중국인을 밀입국 시켜려다 그 중 25명이 질식사 했고 질식사 한 시체를 바다에 유기한 잔혹한 사건입니다. 돈 앞에서 얼마나 인간이 잔혹해 질 수 있는지 폐쇄된 공간에서 얼마나 인간이 권위 앞에 쉽게 굴복하는 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얼개를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잘 연출하면 빼어난 영화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폐쇄된 공간이 주는 스릴과 함께 인간의 광끼를 제대로 만 담는다면 또 하나의 살인의 추억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이런 기대는 허물어졌습니다. 영화는 IMF가 터진 이후 황폐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안강망 어선을 폐선처리 하겠다는 방침에 따라서 강선장(김윤석 분)은 마지막까지 이 배를 살리려고 했지만 매번 고기 잡이가 시원치 않습니다. 한 번은 그물을 바다에 드리우려다 배의 막내인 동식(박유천 분)이 그물에 걸려서 죽을 뻔 했는데 강선장의 순간적인 기지로 유압 케이블을 절단해서 동식을 살립니다. 이 모습을 통해 선장이 돈 보다는 생명을 더 우선시하는 평범한 선장임을 보여줍니다. 모든 선원이 선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여자 좋아하고 돈 벌이 걱정하는 그냥 평범한 뱃사람들입니다. 강선장도 말은 툭툭 내 뱉어도 돈 보다는 막내를 생각하는 평범한 어부입니다. 

그러나 강선장은 고기 잡이가 시원치 않아서 아내에게 구박받고 자신이 몰던 배를 폐기처분 해야 하는 위기에 놓입니다. 
돈이 궁하게 되자 강선장은 밀항을 원하는 재중동포를 배에 태워서 한국으로 이송하는 위험한 일을 맡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불법을 저지르면서 다른 선원과 단 한 마디도 상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질러놓고 배를 띄운 후에 선원들에게 사실을 말하면서 돈 다발을 던져줄 뿐입니다. 그러고서 "우리는 한 배를 탔다고"말합니다. 좀 어처구니가 없죠. 범죄를 같이 모의하고 이 범죄 행위에서 빠질 사람은 빠지라고 하고 했다면 모르겠으나 그냥 범죄를 했으니까 같이 하는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합니다. 


이런 모습은 강선장이 상당한 귄위의식을 가진 사람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행동 방식과도 비슷합니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 했던 행동을 스스로는 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했다는 식으로 자기 위안과 변명을 하죠. 이런 권의의식에 다른 선원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합니다. 다만 기관사인 완호(문성근 분)만이 작은 목소리로 항의를 합니다. 

영화 초반에는 이런 귄위에 대한 복종이 지배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하나의 작은 배가 한국을 그대로 닮은 듯한 권위가 운영체제인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솔직히 이번 군대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의한 윤일병 임병장 사건은 권위에 눌려서 신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군대의 폐쇄성과 권위로만 똘똘뭉친 집단의 썪은 내를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배라는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도 바다에 떠 있으면 하나의 세계가 되어서 외부와의 접촉이 되지 않으면 그 자체가 감옥이자 무서운 군주가 사는 독재국가가 됩니다. 영화는 여기까지는 꽤 좋은 흐름을 보여줍니다.

공해상에서 재중동포를 태운 후 선원들은 비록 불법이지만 이 동포들에게 컵라면을 나눠주면서 따스한 인품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동식은 홍매(한예리 분)가 바다에 빠지자 목숨까지 걸면서 홍매를 바다에서 구해냅니다. 
이렇게 따스한 성품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공해상에서 밀항 준비를 하던 강선장은 멀리서 해경 단속이 뜨자 이 재중동포를 잡은 물고리를 넣는 창고인 어창에 다 쑤셔 넣습니다.  해경의 부패한 관리와의 뒷거래를 한 후에 어창을 열어보니 재중동포가 모두 죽어 버렸습니다. 프레온 가스가 터져서 가스 중독에 걸린 것입니다.

여기서 부터 영화속 인물들은 2명만 빼고 모두 광끼를 보여줍니다. 



광끼를 보여주는 선원들까진 좋았으나 홍매를 왜 구해야 했나요?

죽은 재중동포를 바다에 유기하는 과정의 잔혹함 속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 홍매입니다. 홍매는 동식이 따뜻한 기관실에 숨겨둔 아가씨입니다. 영화는 엄청난 살인 행위를 한 후에 유유히 선장의 지시에 따르는 호영(김상호 분)과 경구(유승목 분)
과 창욱(이희준 분)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선장의 지시에 아주 잘 따릅니다. 
보통 이런 거대한 살인이 일어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울먹이거나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데 강선장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또는 선원들을 살리기 위해서 시체 유기를 지시합니다. 이런 모습에 유일하게 저항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완호입니다. 그러나 완호의 저항도 관객의 입장을 대변하기 보다는 그냥 허투루 소비를 해 버립니다.이런 미쳐가는 선원들의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긴 하는데 이 과정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많지 않은 선원들 중에서 처음부터 악마 같았던 선원과 천사에서 악마로 변해가는 선원과 처음부터 천사였던 선원을 배치해서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감정이입을 할 선원이 동식이라고 명령하고 있지만 동식에게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악마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경구라는 인물은 그나마 좀 이해가 갑니다. 여자 좋아하고 돈 앞에서 친절한 경구라는 인물은 그나마 자리를 잘 잡았지만 

선장이자 주인공인 강선장이 왜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했는 지에 대한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냥 뱃놈이니까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두려워서 폭력을 가하는지는 몰라도 과도한 폭력을 보여줍니다. 

이런 무자비함에도 어느 선원도 말리지 않습니다. 동식이 나서긴 하지만 그건 선함이라기 보다는 홍매를 잘 숨기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해무가 밀려오자 닥치고 홍매 구하기에 나서는 동식

이 영화는 스토리에 대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제가 이 영화에 짜증이 났던 이유를 후반에 강선장이 말합니다.
저 가스나가 뭐라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강선장이 동식을 패면서 말합니다
동식과 홍매는 이번 밀항에서 처음 본 사이입니다. 물에 빠진 홍매를 동식이 구해줍니다만 그렇다고 그 일 하나가지고 서로가 사랑에 빠지기에는 연결고리가 너무나 헐겁습니다. 첫눈에 반했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런 거대한 범죄를 하는 과정에 사랑에 빠지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동식이 아주 선한 인물 같지도 않습니다. 절대 선을 가진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식이 선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선 그 자체가 일으킨 선한 마음이 아닌 홍매를 위한 선입니다. 선장이라는 절대 악 앞에서 동식은 큰 저항을 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홍매를 구할 때는 맞섭니다. 홍매가 뭔데 저렇게 지킬까요? 친 여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지 며칠 되지도 않는 여자를 두고 목숨을 넘어 동료까지 패는 모습은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의문이 계속 듭니다. 

 

영화는 이 과정의 설득력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마치 시나리오에 넌 홍매 구하는 것만 하는거야 그냥 닥치고 홍매를 구해!라고 명령문이 써 있던 걸까요? 왜 동식이 홍매를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당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게 되지 않으니 주인공인 동식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이해가 안 갑니다. 홍매가 자신의 양심이라고 지켜야 한다면 또 이해가 갑니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냥 육지에 도착하면 자신이 데리고 살고 싶다는 또 하나의 욕정의 화신으로 밖에 보여지지가 않습니다.  홍매 구하려다가 절대 악과 절대 선의 대결구도도 아닌 먹고사니즘의 절대 악인 강선장과  홍매에 대한 욕정의 화신인 동식의 대결로 그려져서  최악과 차악의 대결로까지 보여집니다. 

홍매와의 러브씬도 짜증입니다. 홍매 일병과의 사랑? 홍매 일병 구하기. 홍매가 뭐라고 홍매가 뭔데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크게 자책하지도 않으면서 홍매에게만 해물라면까지 대접 하는지 영화는 큰 설명이 없습니다. 이런 성긴 시나리오에서 무슨 좋은 영화가 나오겠습니까?

배우들의 연기만 맑았던 영화 해무

이 해무의 유일한 볼꺼리는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강선장 역을 한 김윤석이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일한 입체적인 성격의 캐릭터입니다. 다른 캐릭터들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면 강선장의 행동은 이해가 좀 갑니다. 그 이해가 가는 이유는 시나리오가 아닌 김윤석의 눈에서 나옵니다. 절대 악인 강선장이지만 흔들리는 눈빛에서 나도 어쩔수 없잖아! 모두 살려면 이럴 수 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고통에서 울부짖는 짐승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박유천의 첫 스크린 데뷰작이지만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사라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박유천은 제가 아는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중에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독립영화계의 꽃인 한예리의 모습을 오래 길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렇게 3명의 배우의 연기가 유일한 볼꺼리이자 이 영화의 미덕입니다. 

또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뛰어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영화는 많이 웃깁니다. 창욱이라는 선원은 여자에 굶주린 짐승 같은 인물인데 홍매를 찾아서 이리저리 뛰는 모습에 관객들이 크게 웃습니다. 코믹 스릴러인가? 영화가 의도한 것은 아닌 광끼를 그린건데 이 부분에서 광끼가 웃음으로 변질 되네요. 영화는 여러모로 참으로 아쉽고 아쉬운 영화입니다. 연출력도 별로고 이야기의 짜임새도 설득력도 없습니다. 더구나 결말 부분에는 짜증이 밀려옵니다. 관객 대부분이 짜증을 내면서 나오던데요. 이 영화가 헐리우드 식의 블링블링한 마무리를 하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무한 결말은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영화 보고 나오면서 한 마디 했습니다. 해무가 아닌 허무라고요. 
이 영화는 여름 흥행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집단 광끼를 잘 담지도 못합니다.  좋은 소재임에도 이걸 홍매라는 인물로 다 헝클어 놓습니다. 비추천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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