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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감정이 사라진 통제사회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by 썬도그 201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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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흑백 영상으로 시작 합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복사해서 붙여 넣기한 듯한 동일한 집에서 사는 통제사회. 이곳은 감정이 사라진 그래서 고통도 없는 세상입니다. 모든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며 친 엄마 친 아빠가 아닌 랜덤하게 인위적인 가정에 배정이 됩니다. 

모든 아이들은 정확한 언어를 써야 하며 평등하고 규칙적인 세상에 살아갑니다. 이 고통 없고 규칙적이고 공평한 세상을 위해서 커뮤니티라는 거대한 공동체는 색채 정보도 불필요하다고 느끼고 색을 지워버려서 아이들은 세상을 흑백으로 봅니다. 불만이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태어나면서부터 흑백으로 세상을 보고 살았는데요. 

멋진 신세계가 그린 디스토피아와 유사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더 기버 : 기억전달자


좀 식상합니다. 이 고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통제사회와 강력한 평등사회를 만들어서 감정을 지우기 위해 어른들의 기억을 싹 지워버린 이 영화 속 세계관은 좀 식상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런 소재와 주제를 가진 영화가 많이 나왔습니다.

보는 내내 이퀄리브리엄이 생각났습니다. 감정이 사라진 디스토피아를 신부가 총을 들고 지도자를 죽여서 세상에 다시 감정이 샘솟게 하는 그 자체가 이 더 기버와 거의 유사합니다. 다만 더 기버가 액션은 싹 빼고 드라마에 집중했다면 이퀄리브리엄은 액션에 방점을 둔 영화죠. 

두 영화의 유사점은 세계관이 비슷함을 넘어 매일 아침 감정을 억제하는 혹은 방지하는 주사와 알약을 먹는 모습 등등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이야기 전개 방식은 다르지만 큰 얼개는 비슷합니다.  여기에 트루먼쇼와 비슷한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더 기버가 20년 전에 나온 소설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이퀄리브리엄이나 트루먼쇼가 이 영화의 원작 소설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년전에 태어났지만 20년 동안 국내에서 거의 소개가 안 된 작품이어서 우리가 인식하는 순서는 트루먼쇼, 이퀄리브리엄 다음에 더 기버이기 때문에 식상함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또한 더 기버가 먼저 꺼낸 이야기라고 우겨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 더 기버라는 소설의 원형질은 올들리 헉슬리가 1932년에 출간한 멋진 신세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멋진 신세계는 몇달 전에 읽었는데 읽으면서 감탄 한 것은 몇몇 부분만 빼고 미래의 통제 사회를 아주 그럴싸하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멋진 신세계와 더 기버의 비슷한 세계관은 꽤 많습니다. 먼저 모든 아이들이 공동 양육 되고 기준에 미달한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용도 폐기처분 당하는 모습은 매우 비슷합니다. 여기에 고통이 사라진 공동 쾌락사회라는 것도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멋진 신세계에서는 쾌락제인 알약이 있는 반면, 더 기버에서는 감정을 억제하는 주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큰 얼개는 또 비슷합니다. 고도의 기술 발달 세계에 사는 신세계 사람들과 기존의 인간의 방식으로 사는 야만인 또는 인간으로 구분하는 점은 비슷합니다.  이렇게 이전의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차용한 듯한(비록 더 기버라는 소설이 먼저 나왔다고 해도) 내용은 확 끌리지 않습니다. 


기억을 오롯하게 간직한 기억 전달자의 시선으로 본 세상

조너스(브렌튼 스웨이츠 분)과 피오나(오데야 러쉬 분), 애셔(카메론 모나한 분)는 단짝 친구입니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직업을 부여 받습니다. 아이들의 적성을 파악해서 커뮤니티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직업을 부여합니다.

피오나는 양육사, 애셔는 무인비행기 조종사가 됩니다. 그러나 조너스는 직업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커뮤니티의 수석원로(메릴 스트립 분)은 조너스가 기억보유자로 지정 되었다면서 남들보다 뛰어난 4가지 이유 때문에 선정 되었다고 합니다.  기억보유자로 지정되면 기억전달자가 가진 모든 기억을 기억보유자 뇌로 전송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기억을 전송 받아야 하는 이유는 커뮤니티의 문제 때문입니다. 이 커뮤니티라는 공동체는 대변혁 이후에 어른들의 기억을 싹 지워버렸습니다. 조너스 같이 대변혁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기억을 지울 필요가 없지만 대변혁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의 기억을 싹 지웠습니다. 그 이유는 폭력 없고 왕따 없고 시기심 없는 감정이라는 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기억을 지우고 그 기억 대신에 감정을 철저하게 억제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서 폭력, 미움, 질투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우고 평등 그리고 강제적인 평화를 심어 놓았습니다. 이 고도의 발달된 기술을 보이는 커뮤니티는 날씨마저도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갑니다. 빈틈 없는 유토피아라고 할까요?

하지만 이 커뮤니티도 문제가 발생하면 과거라는 기억에 의존해야 합니다. 비슷한 일을 과거에는 어떻게 해결 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을 가진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역할을 조너스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기억을 전달할 자는 연로한 기버(제프 브리지스 역)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더 기버입니다. 즉 젊은 주인공인 조너스가 아닌 기억을 전달해주는 연로한 제프 브리지스가 연기한 기버입니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소설책 제목이기에 그렇겠지만) 영화를 보면 기버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조너스가 주인공입니다. 


왜 기억을 전달하고 그 기억을 복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가 좀 약한 더 기버

감정이 사라진 세상은 흑백입니다. 그런데 조너스라는 기억보유자는 기억전달자인 기버로부터 기억을 전송 받습니다. 그 기억을 전송 받을 수록 세상은 흑백이 아닌 점점 컬러로 보게 됩니다. 기버가 전달해주는 기억이란 실로 다양합니다. 썰매를 타고 황혼이 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배를 타고 사랑하는 여인과 춤을 추고 음악을 들으며 다양한 대변혁 이전의 인간의 삶을 봅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잡하고 다양한 삶이 진짜 인간의 삶이고 비록 폭력과 시기와 미움이 있지만 사랑과 즐거움과 쾌락과 다양성이 존중받고 제공받는 인간의 삶이 진짜 컬러플한 삶이고 평화롭고 폭력이 없고 고통이 없으나 쾌락도 없는 현재의 흑백 같은 단조로운 삶은 걷어차라고 말합니다. 

조너스는 이 기억을 전달 받으면서 이 커뮤니티라는 공동체가 다름이 아닌 틀리다고 생각하고 이 세계를 분쇄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전 이 과정이 좀 매끄럽게 보이지 않네요. 왜 기억을 전달해야 하며 그 기억보유자가 오히려 커뮤니티를 붕괴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왜 커뮤니티는 몰랐을까요? 날씨까지 제어하는 고도의 기술세계가 이런 오작동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좀 뜬금 없어 보입니다. 


또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컬러플한 인간의 삶인 대변혁 이전의 삶이 옳다고 주장하는 말에도 전 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원로수석인 메릴 스트립이 왕따가 있고 고통과 전쟁이 있는 그 세계로 돌아가자고요?라는 말이 더 와닿더군요.  제가 삐딱선 선장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오히려 전 시기와 질투, 전쟁과 폭력과 같은 인간의 어두운면이 더 많은 현실에서 오히려 통제 되는 것을 말면서 통제되고 대신 고통 없고 납득할만한 평등이 유지되는 커뮤니티가 좀 지루할지는 몰라도 더 좋게 보이거든요. 물론 이건 저만의 생각이지 보편적으로는 대변혁 이전의 삶을 관객은 추종할 것입니다만 다만, 과연 그런 세상이 정답인가? 라는 의문이 들긴 하네요


잔잔한 SF드라마, SF액션을 기대한 분이라면 절대 비추


헐리우드 영화 중에서 한국 영화보다 강한 장르가 SF입니다. 아무리 한국 영화가 잘 나가고 잘 만든다고 해도 SF장르 한국 영화는 몇개 없습니다. 있는 것도 다 망했죠. SF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제약이 있는 소재를 레고 블럭처럼 자유롭게 조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멋진 드라마와 철학을 녹여 낼 수 있습니다.

뛰어난 시각적 효과와 SF영화의 기본 덕목인 액션 여기에 놀라운 스토리가 SF영화의 매력을 만듭니다. 그런데 더 기버는 그러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있습니다만 뛰어난 시각효과나 액션은 전혀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시종일관 지루하고 지루합니다. 

물론, 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이퀄리브리엄이나 멋진 신세계를 읽은 저에게는 그 마저도 식상하더군요. 그 틀에서 이야기는 크게 튀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대변혁이 왜 일어났고 일어났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묘사나 설득의 시간을 넣었으면 했는데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냥 흑백의 세상은 틀렸고 컬러가 가득한 고통과 사랑이 있는 감정의 진폭이 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손을 잡고 뜁니다.  왜 뛰는지 말하지도 않습니다. 넌 닥치고 내 말만 들어! 식으로 진행하니 더 지루합니다. 



더 기버는 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대부분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멋진 신세계나 이퀄리브리엄을 본 분들에게는 식상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두 소설과 영화를 안 본 분들에게만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가장 볼만한 것은 두 남녀 배우입니다. 

저는 처음 보는 선남선녀인데 상당히 매력적이네요. 조너스 역의 브렌튼 스웨이츠는 건장하고 건강한 청년 이미지고 피오나 역의 오데야 러쉬는 두툼한 입술이 매력적인 아가씨입니다. 두 두 남녀 주인공은 매력적이고 컬러로 보이지만 이야기는 흑백이고 액션은 아예 없는 밍밍한 영화입니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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