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을 울리기는 쉽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리고 죽어가는 과정만 담아도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그러나 이런 슬픈 소재가 주는 눈물은 개운치가 않습니다. 마치 억지 웃음을 웃은 듯한 눈물은 휘발성이 아주 강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짜증도 밀려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흘리는 여운이 긴 눈물이라기 보다는 영혼이 아닌 몸이 반응해서 우는 눈물을 만드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의 특징은 이야기나 주연 배우의 연기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닌 죽어가는 주인공이라는 소재에서 눈물을 뺍니다. 

그냥 맵기만 한 매운탕 같은 최루성 영화가 꽤 많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최루성 영화는 매우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매운탕이 바로 맛있는 매운탕입니다.


매콤하고 맛있는 매운탕 같은 영화 '안녕 헤이즐'

안녕! 헤이즐은 매운탕입니다. 그런데 맛있는 매운탕입니다. 소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주인공 헤이즐(쉐일린 우들리 분)은 갑상선암을 앓고 있는 여대생입니다. 갑상선암이 온 몸으로 퍼져서 폐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들고 다니고 코에 산소공급 호스를 꽂고 살아야 합니다. 

어렸을 때 걸린 암 때문에 헤이즐은 남자친구도 친한 친구도 거의 없습니다. 
보통, 이런 시한부 인생이라는 조건은 아주 나쁜 소재입니다. 관객에게 울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굿바이 마이프랜드'같이 이런 시한부 인생이라는 소재를 가지고도 아주 잘 만들 수 있기에 소재에 대한 반감은 살짝 줄였지만 그럼에도 소재 자체는 아주 좋게 보이지가 않네요.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워낙 입소문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시사회를 통해 본 사람들의 평이 좋더라고요. 여기에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누르고 미국과 여러 국가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영화라는 해외의 흥행 성공 소식도 저를 고무시켰습니다.

뭔가가 있구나?라는 기대심을 가지고 영화를 봤습니다.


헤이즐은 아주 착한 아가씨입니다. 보통 암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으면 주변 사람, 특히 엄마 아빠에게 화를 내거나 항상 우울해하고 있는데 헤이즐은 반항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착한 아가씨입니다. 암 치료를 하고 암환자 모임에도 군소리하지 않고 잘 나갑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헤이즐에게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특히나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헤이즐은 그런 겉치레 같은 모임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것에 대한 공포보다는 내가 죽으면 남겨진 엄마의 슬픔을 더 걱정하는 아가씨입니다. 그렇게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암환자 모임에서 왕자님을 만납니다.


어거스터스(앤셀 에거트 분)는 암 때문에 무릎 아래 발을 절단했고 각막암에 걸린 친구 따라 모임에 왔다가 헤이즐에 꽂힙니다. 헤이즐을 보고 너무 예쁘다면서 계속 쳐다보는데 헤이즐은 이 시선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렇게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친한 친구가 됩니다.

어거스터스는 긍정의 달인입니다. 
암 때문에 다리를 잘랐지만 덕분에 몸무게가 줄었다면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영화는 이 긍정의 달인인 어거스터스의 유쾌하고 사람 기분을 좋게 해주는 농 익은 대사들이 관객석에 웃음 꽃다발을 던져줍니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고 겪었기에 금방 친해집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읽는 책을 상대가 읽습니다. 어거스터스는 영웅을 좋아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웅을 좋아하지만 헤이즐은 자신만 기억해주는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하죠. 이렇게 둘은 서서히 친해지게 됩니다. 

한 번도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헤이즐. 그리고 18살이지만 아직 숫총각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어거스터스
이 둘은 헤이즐이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읽고 또 읽은 네덜란드 작가인 '피터 반 하우튼(웰렘 데포 분)'의 책을 공유합니다. 

헤이즐에게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이 피터 반 하우튼을 만나서 책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헤이즐의 악화 되는 병과 네덜란드에 갈 만한 돈이 없는 집안 사정상 이 꿈을 접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납니다. 


비극 위에 뿌려진 희극

시한부 인생을 다룬 영화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처음에는 웃기다가 나중에 울립니다. 영화 헤이즐도 이런 영화적 관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아주 밝고 경쾌합니다. 헤이즐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만 지우면 그냥 흔한 로맨틱 코메디 영화라고 할 정도로  청춘 남녀의 달달함이 아주 잔뜩 묻어 나옵니다. 

소재의 어두움을 숨기려는 듯 비극이라는 케익위에 희극의 크림을 잔뜩 바릅니다. 전 이 영화를 보고난 후 80년대 빅히트한 한국 영화인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가 떠오르더라고요. 처음부터 후반까지 줄곧 웃기다가 마지막에 큰 눈물을 흘리게 하는 모습이 청춘스케치와 흡사해봅니다. 

영화는 이렇게 시종일관 웃음과 찰진 대사와 맛깔스런 농담으로 유쾌한 감정을 계속 샘솟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 웃음의 크림을 다 먹으면 그 속에 비극이 나온다는 것을요. 그래서 보는 내내 뻔한 스토리로 가는구라나는 시니컬한 생각이 계속 듭니다만 놀랍게도 영화 후반에 큰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영화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만들어냅니다. 

예상되었던 눈물이 아닌 놀라운 반전 때문에 준비된 눈물이 아닌 놀람과 함께 슬픔의 보가 터지고 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나 전 눈물이 나오기 직전에 멈췄는데 다른 여성 관객들은 많이들 우시네요. 



현실주의자인 헤이즐이 느낀 현실이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

헤이즐은 지독한 현실주의자입니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도 다 부질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남자친구인 어거스터스의 공상과 상상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좋아하긴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자기가 떠난 후 엄마 아빠의 삶까지 걱정을 합니다. 

자신은 죽으면 끝이지만 엄마 아빠는 평생을 자신을 생각할 것이라는 모습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삶에 대한 희망 같은 것도 크게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사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바라봅니다. 이는 죽음에 근접한 사람들이 가진 극심한 현실성이기도 합니다. 물론 사후 세계도 헤이즐은 믿지 않습니다. 

이런 헤이즐을 긍정주의자이자 낙천적이며 상상하기를 좋아하고 영웅을 좋아하는 어거스터스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의 방의 수 많은 계단을 오릅니다. 폐가 약해서 조금만 오래 걷거나 계단을 오르면 숨이 가파지는데 헤이즐은 이 계단을 스스로의 힘으로 오릅니다.

이런 변화를 이끈 것은 어거스터스입니다. 
이 영화에서 어거스터스가 보여주는 넓은 사랑은 많은 여성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사랑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고통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서 고통이 가득한 헤이즐을 꼭 안아줍니다.

이런 현실주의자 헤이즐이 유일하게 상상하고 공상하는 것이 바로 불치병 투병기를 아주 잘 담은 소설을 쓴 '피터 반 하우튼'을 만나서 소설의 뒷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현실주의자인 헤이즐이 가상의 세상인 소설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헤이즐이 겉으로는 현실주의자지만 속에는 소녀 같은 상상를 바라고 있고 그걸 집착하는 모습에서 이 힘들고 고통이 가득한 삶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냥 체념하듯 사는 헤이즐도 사실은 살고 싶어하고 남들처럼 남자친구와 여행도 가고 손 잡고 영화도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걸 스스로 봉인하면서 살았습니다. 
죽음에 문턱까지 갔다 온 헤이즐이지만 이게 오히려 삶에 대한 애착 보다는 삶을 관조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터스가 헤이즐에게 예쁘 얼굴을 가졌다고 말하자 농담이라면서 웃어 버립니다. 

안녕! 헤이즐은 뻔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슬픔을 감동으로 포장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비현실이고 이게 현실이라면서 말하는데 그 말처럼 영화는 뻔하지 않았습니다. 예쁘게 포장은 하지만 현실적인 일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이 현실성이 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억지 결말이 아닌 가장 현실적인 결말, 그러면서 끝까지 웃음을 놓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입니다. 
살다보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가혹한 고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수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해피하게 끝이나지만 그건 진짜 삶이 아닙니다. 진짜 삶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진짜 삶입니다. 영화 안녕! 헤이즐은 진짜를 담고 있습니다. 그 진짜가 주는 웃음과 눈물이 이 영화를 저 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게 합니다. 

그 진짜 중에 가장 빛나는 진짜는 헤이즐로 향하는 어거스터스의 무한대의 사랑입니다. 정말 저런 남자가 있을까 할 정도로 셀 수 없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마치 평생 생일 잔치 한 번 하지 못한 여자 친구에게 깜작 생일 파티를 해주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한정된 삶에서 발견한 무한대의 삶

시한부 인생이나 보통의 인생이나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인간의 삶 자체가 유한한 삶입니다. 
그러나 이 유한한 삶에서 무한대의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무한대의 삶을 느끼게 해줍니다. 하나의 삶은 유한하지만 하나의 삶과 삶이 만나면 삶은 무한대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삶이 지면 그 삶을 다른 삶이 기억하고 전달하면 누군가의 머리속에서 사라진 삶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안녕! 헤이즐은 줄거리 자체는 큰 반전이 있긴 하지만 아주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특히. 피터 반 하우튼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중요한 의미 전달자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역할이 전혀 없네요. 

다만, 비현실적인 이야기 구성이 아닌 아줌 담대하고 담담한 암 환자의 인생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두 남녀 주연배우의 열연이 이 영화의 매력을 증폭 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여주인공인 헤이즐을 연기한 '쉐일린 우들리'의 사랑스러운 연기가 눈에 잊혀지지가 않네요. 아주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정말 매력 만점의 여자배우입니다.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웃음과 눈물이 있지만 뻔한 스토리는 삭제한 담백하면서 깔끔한 최루성 영화 '안녕 헤이즐'입니다.
여자 분들이 아주 좋아할만한 영화입니다. 깊이가 생각보다 깊지 않았던 점만 빼면  볼만한 로맨틱 멜로 가족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누구의 잘못인지 몰라서 고통 받고 있는 분들에게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가 원작인 안녕! 헤이즐을 추천합니다. 


안녕, 헤이즐 (2014)

The Fault in Our Stars 
8.9
감독
조쉬 분
출연
쉐일린 우들리, 앤설 에거트, 냇 울프, 윌렘 데포, 로라 던
정보
드라마 | 미국 | 125 분 | 2014-08-13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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