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입양아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진솔하게 담은 피부색깔=꿀색

by 썬도그 2014. 5. 8.
반응형

정확한 나이는 모릅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썩은 사과를 먹고 있던 전정식은 경찰관에 이끌려서 홀트 아동 복지회가 운영하는 보육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먹성 좋은 이 아이는 홀트 아동 복지회를 통해서 해외로 입양될 예정입니다. 
그는 고아인지 아니면 엄마가 버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경찰관이 발견 당시 자세한 기록을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인지 아니면 미아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피부색깔=꿀색, 정식이의 외모를 표현한 단어와 문장 중에는 피부색깔=꿀색이 있습니다. 


그렇게 정식은 어린 나이에 벨기에로 입양이 됩니다. 집으로 오는 차에서 정식의 새로운 이름이 불리웁니다. 융~~ 가족들은 깔깔대고 웃지만 정식은 불어를 알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금방 이 새로운 나라, 새로운 엄마 아빠와 함께 즐겁게 살아갑니다. 먹고 싶은 콜라도 마음 껏 먹을 수 있고 피부색은 다르지만 다정다감한 형제들이 있습니다. 

특히, 바로 밑 여동생은 융을 잘 따릅니다. 오빠가 짱께라고 놀림을 받으면 우리 오빠라고 화를 내는 의협심 강한 여동생입니다. 


그러나 융은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다른 형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흔한 사춘기의 자의식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없는 버림 받았다는 거대한 공포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돈이 시작 됩니다. 

또 다른 한국 입양아 동생인 발레리를 미워하기도 하며 


한국과 적대 관계가 있다는 이유 만으로 일본 노래와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문화에 심취하게 됩니다. 
다른 한국 입양아들과 달리 융은 다른 한국 입양아를 보면 길을 돌아서 갑니다. 이런 강한 정체성 혼돈은 비단 융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한국 입양아를 넘어 국내 입양아에서도 나오는 통과 의례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정체성 혼돈에 대해서 벨기에나 한국이나 제대로 된 처방을 할 수 없었고 오로지 해외 입양아들 스스로 감당하고 스스로 치유해야 했습니다. 융은 점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고 삽니다. 


그러다 같은 한국 입양아 출신의 친구를 만나게 되고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수록 자신에 대한 정체성 혼돈에 괴롭기만 합니다. 이런 혼돈 상태의 융은 자기 자신을 '썩은 사과'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피부새깔 꿀색은 이런 해외 입양아들이 갖게 되는 정체성 혼란을 잠 담은 영화입니다.


해외 입양아들이 겪는 고통을 미끈한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피부색깔=꿀색'

해외 각종 유명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한 '피부색깔=꿀색'은 전정식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으로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아주 독특한 형식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 영화는 전체가 애니메이션은 아닙니다. 실사와 애니가 적절하게 섞여 있는데 이 섞는 과정이 너무나도 매끈합니다. 마치 이음새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사와 애니가 유려하게 연결 됩니다.

영화는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합니다. 한국전쟁이후 많은 고아들이 생겼고 그 고아들을 홀트씨가 부인과 함께 해외로 입양하는 홀트 아동 복지회를 설명합니다.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홀트 아동 복지회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동시에 융 감독의 유년 시절의 모습을 담습니다. 

그리고 벨기에에 입양 되었을 당시에 삼촌이 찍은 슈퍼 8mm 영상도 소개 됩니다. 저는 처음에는 저거 재연 한 영상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삼촌이 영상에 관심이 많아서 사진과 영상을 많이 남겼습니다. 융 감독은 가족의 허락을 받고 당시 촬영한 영상을 영화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2010년 다시 한국에 와서 생모를 찾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보여줍니다. 
이런 영상물과 함께 전정식(융 감독) 감독이 벨기에에서 겪은 해외 입양아들이 가지는 고민과 고통 그리고 그 아픈 생채기를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성장을 하면서 어린 융이 부리는 많은 혼란스러움과 말썽꾸러기를 넘어서 극심한 사춘기 소년 같은 모습을 애니로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이런 파격적인 형식미가 참 좋더군요. 먼저 애니의 작화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3D로 만들어진 영상은 오래된 종이 느낌이 나는 정감 넘치는 랜더링을 더해서 빛 바랜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따스함이 보여집니다. 

여기에 적절하게 섞여서 소개 되는 실사 영상은 이 영화를 감독이 회상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한국에서 뿌리를 찾으러 왔다가 돌아보는 유년 시절의 고통과 힘든 시간을 회상하는 모습은 이 영화에 쉽고 빠르게 빨려 들어가게 합니다. 정말 이런 미끈한 화면 전환과 미끈한 스토리텔링은 '피부색깔=꿀색'이 호평과 관객들의 인기를 끄는 이유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우울하지는 않습니다. 꽤 흥미로운 장면과 재미있고 웃기는 장면도 많습니다. 그리고 어린 융이 겪는 고통도 애니메이션의 장점인 추상적 이미지와 함께 큰 상상력을 화면에 담아 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형식미와 함께 해외 입양아들이 겪는 고통도 아주 밀도 높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자신을 버린 나라인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기 위해 일본을 좋아한다거나 같은 한국 입양아 출신의 동생 발레리나 또래의 한국 출신 여자 아이를 처음에는 배척하는 모습과 동시에 비슷한 외모를 한 그들에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모습을 통해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과 갈등을 영화는 몇몇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 말미에는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벨기에와 한국의 문화를 모두 가지고 가야 하는 고통을 '피부색깔=꿀색'은 감독의 진솔한 고백을 담은 애니를 통해서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고 전정식 감독을 바꾸다

전정식 감독은 자신의 유년 시절의 고통을 애니로 담았습니다. 단지 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고 5월 중순에는 UN에서도 상영을 하는 등 전세계에서 큰 인기와 관심을 가지게 되자 입양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감독 전정식도 자신의 유년 시절의 고통을 넘어서 입양에 대한 다양한 토론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입양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단순히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이고 사회적인 문제나 담론으로 만들 의도는 없었지만 이 영화가 마중물이 되어서 입양아들이 겪는 정신적인 혼란과 입양아를 키우는 가정들의 고민을 풀어주고 담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감독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최근에 사회 문제를 다룬 한국 영화들이 늘어가고 있고 그런 영화들이 공분을 일으켜서 스크린 밖 현실을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영화도 그런 사회 문제를 담은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해외입양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괜스레 눈물이 납니다. 그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닌 그런 존재를 잉태하는 이 못난 세상이 너무 서글프기 때문입니다. 

전정식 감독은 입양을 권하는 사회 보다는 입양아가 생기는 원인부터 치료했으면 한다고 인터뷰를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미혼모도 결손 가정도 부모가 키워낼 수 있게 사회와 정부의 노력으로 줄여가는 것이 이 아이들이 겪는 필연적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덜어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입양아들이 겪는 혼란은  거대한 사랑으로 다 치료할 수 있다면서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확인 시켜줘야 한다고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5월 11일은 입양의 날입니다. 이번 주 추천할만한 영화도 볼만한 영화도 없지만 유일하게 제가 추천하는 영화는 
3대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모두 휩쓴 '피부색깔=꿀색'입니다.  한국 사회가 좀 더 건강하고 바른 사회가 되길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 합니다. 

영화 엔딘 크레딩에 흐르는 노래는 전정식 감독의 고등학생 딸이 직접 만든 곡으로 아빠에게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꼭 가사를 음미해서 들어보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