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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서울시청 앞의 긴 추모행렬

by 썬도그 201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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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는 인재입니다. 사람의 실수와 이 사회의 부도덕함이 빚어낸 참사입니다. 안개가 낀 바다를 무리하게 출항한 안전 보다는 돈을 우선시 하는 배금주의가 세월호를 출항 시켰습니다. 이 배금주의는 세월호 선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적을 하고 출항을 해도 무사 통과였던 관리의 부재도 다 배금주의입니다. 

여기에 비도덕적 가족주의인 마피아 같은 해운 협회와 정부 그리고 청해진 해운이 참사의 원흉입니다. 여기에 무능함을 적나라하고 꼼꼼하게 보여준 해경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들은 전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게 하고 있습니다. 

배가 기울어져서 승객들이 승객을 구하고 있는데 배 난간에서 그걸 구경하는 해경, 고무보트 1척으로 구조 활동을 했던 해경, 보다 못한 어업지도선이 해경에게 사람 구하라는 소리를 들었던 무능과 무식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해경은 이번 참사의 해경 해체까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아무런 정말 아무런 구조 활동도 하지 않고 배에서 스스로 탈출한 승객만 구할 수 있나요?

오히려 어선들이 접근하려고 하자 접근하지 말라고 하고 언딘이라는 상위 기관 같은 업체와 계약하라고 종용을 할 수 있나요?
전 이 해경이 해경인지 해적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이 참 부끄럽습니다. 이런 개차반 같은 세상을 만드는데 저를 포함한 대한민국 어른 모두가 큰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분들은 더 큰 분노와 허탈함과 미안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안산 화랑유원지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해서 추모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제 주말 연휴라서 많은 시민들이 들로 산으로 강으로 놀이공원으로 놀러 갔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긴 줄을 서고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달래고 있습니다. 




긴 줄은 광장을 돌아 서울시청 앞 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미안합니다라는 문구가 너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또한, 이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기성세대 중의 기성세대이자 사회 곳곳에서 큰 권력을 쥐고 있는 4,5,60대 어른들은 철저하게 반성을 해야 합니다.

전 한국의 비도덕적인 가족주의가 이런 비루한 세상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지 새끼 먹여 살린다면 부정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수 많은 공무원 정치인 그리고 기업인들과 우리들이 이런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부모가 많아져야 한국은 깨끗해질 것입니다. 




많은 추모객으로 인해 3줄 씩 서서 추모를 합니다. 정말 많은 시민들이 추모를 하는 데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노란 리본은 가득 나부끼지만 우리의 염원과 다르게 지금까지 단 한명의 생존자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건물 붕괴 사고도 아닌 선박 사고는 1분 1초가 중요한데 해경은 첫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사상 최대의 작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양심없는 기레기들이 세상을 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언론도 수입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한국 언론은 이제 희망을 바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공중파 3사는 보도 기능을 없애버리고 예능과 드라마만 만들었으면 합니다. 



광장 한켠에는 노란 리본 공원이 있었습니다. 저 깃대 하나하나에 노란 리본이 나부낍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격과 현재의 우리 수준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그 순진한 아이들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합니다. 그게 살아 있는 어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노란 종이배가 아이들을 싣고 나오는 상상을 잠시 해 봤습니다. 이번 사고에 많은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그 참사 과정의 후진스러움과 경악스러운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라는 꽃과 같은 아이들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사진은 야간에 불꽃 놀이를 끝내고 3층 로비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아이들 사진을 봤을때 차마 두 눈을 뜨고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설레이고 흥분 된 밤이였을까요?
그런데 제주도를 얼마 안 남기고 큰 사고가 났습니다. 

초동 조치만 잘 했어도 대부분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리지 못했습니다. 







광장 한쪽에는 시민들이 쓴 편지들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더군요. 고등학생이 쓴 듯한 이 편지에서 고등학생은 우리나라가 이 정도여서 미안하다면서 나라를 바꾸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에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바꾸지 못한 이 더러운 나라를 그 맑은 눈으로 바꾸었으면 합니다. 그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전 많은 어른들이 반성하고 있지만 전 솔직히 어른들의 그런 반성 안 믿습니다. 어른이 왜 어른입니까? 바뀌지 않는 나이가 바로 어른입니다. 또한, 반성하고 있는 어른 대부분은 세상을 바꿀 큰 권력이 없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이 권력자입니다. 

저 또한 그런 힘없는 어른입니다. 그래서 쉽게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어른 다운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선거이고 이번 지방선거는 그 변화를 보여줄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선거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 새끼 잘 먹고 잘 키우겠다면서 남의 자식 등쳐먹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대하는 어른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미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 이 나라 어른들을 잘 알기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방향은 옳은 길로 가야죠. 그러다보면 지금은 희망이 안 보이지만 한 사람 두 사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서로 눈인사를 하면서 큰 물결이 될 것입니다. 




그 희망의 물결이 바로 이 추모의 물결 같았습니다. 


그리고 추악한 언론인 KBS 같은 정권의 나팔수 같은 언론들이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어떻게 실종자가 있는 상태에서 성금 모금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KBS 보도국장은 300명이라는 세월호 희생자는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 숫자 보다 작다면서 앵커들에게 검은 옷을 입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까?

300명이라는 희생자는 살인이 300건 일어난 사고이지 300명이 죽은 사고가 아닙니다. 이런 기레기들이 세상의 창이 된 이 개차반 같은 세상이 역겹기만 합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 세상이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바라보는 CCTV입니다. 아이 무서운 줄 아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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