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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한국 언론의 추잡스러움을 다 보여주고 있는 세월호 사고

by 썬도그 201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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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의 권력기관이라고 할 정도로 언론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직접 본다고 생각을 하지만 정확하게는 우리는 세상의 중요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되고 듣게 되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이 복잡해 질수록 큐레이션이 중요합니다. 정보 홍수 시대에 언론은 어떤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어떤 정보를 버려야 하는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판단력이 좋은 언론 혹은 쓰레기 언론을 판가름 합니다. 



기자의 딜레마를 일으킨 수단 소녀의 사진

이 사진은 94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입니다. 당시 수단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고 보급소로 가던 소녀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케빈 카터라는 남아공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으로 케빈 카터는 퓰리처 상을 수상했고 이 충격적인 사진으로 전세계에서 수단의 기아 현실을 알게 되어서 수 많은 구호 물품이 도착하게 됩니다. 세상을 변화 시킨 사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윤리적 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영화 뱅뱅 클럽의 한 장면)

사람들은 저 소녀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었냐며 케빈 카터의 비윤리적 행동을 질타 했고 이런 질문에 케빈 카터는 큰 상처와 고통을 받습니다.  제가 이 사진의 뒷 이야기를 찾아보고 읽어보고 들어보니 케빈 카터는 저 사진을 찍은 후에 독수리를 쫒아 버렸습니다. 또한, 저 소녀는 엄마가 구호물자를 얻기 위해 보급소에 가다가 잠시 두고 간 것이지 홀로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케빈 카터는 이 모습을 촬영 한 후 바로 수송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이 소녀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녀가 버려진 것은 아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질문인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이 사진은 사진기자의 딜레마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알리는 것이 직업인 기자, 그들의 소명의식

기자는 세상을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직업의식이자 소명의식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기록하고 목격한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입니다. 수단 소녀의 경우 같이 극단적인 상황은 자주 많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또한, 사진을 찍는 것이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진기자나 기자는 사진을 찍은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카메라에 담은 사람을 돕습니다. 낭떠러지에서 매달린 사람을 보고 잠시만요! 사진 좀 찍고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는 손을 먼저 내미는 기자들이 대부분이죠

물론, 특정에 눈이 멀어서 사진을 찍고 도와주지 않는 기자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사건 현장에서 사건 수습을 도와주지 않고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기자도 분명 있습니다. 지난 번 한국사진기자 사진전에 한국을 대표 하는 사진기자 중의 한 분도 이런 비난을 받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특히, 사건 혹은 사고 현장에서 자신만 홀로 있는 경우, 사진기자나 기자가 아니면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카메라를 내려 놓고 기자에서 인간으로 전환해서 사고를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경우 사고나 사건 현장에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구조대는 구조 활동을 사진기자는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까지도 손가락질 하고 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 찍을 시간에 도와주지 않았다고 쉽게 욕을 하기도 하죠. 

그래서 기자들에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물어보면 대부분 사진을 찍고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데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 조건이란!

이 사진을 통해서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확신이 드는 경우에만 카메라로 먼저 기록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그냥 흔한 사건 사고이고 그걸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사건 사고이자 기자 혼자만 목격하고 있고 카메라로 촬영하는 시간에도 사람 목숨이 위태로운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그 사진이 특종감이라고 해도 카메라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한국 언론의 추잡스러움을 다 보여주고 있는 세월호 사고


오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수 많은 언론들은 오보를 연속으로 냈고 이에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부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기밀주의로 인한 정보의 공유의 미흡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만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한국 언론들의 추악함도 큰 일조를 했습니다.

물론, 격앙된 감정의 목소리를 모두 방송 카메라나 신문 기사화 할 수 없지만 정부가 읇어대는 내용만 아무런 비판과 의심도 없이 그대로 담아서 보도 하는 것은 국가 홍보용 언론이지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는 기밀주의가 발달한 정부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난 지금까지도 모든 정보를 다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의문이 들고 이해가 안 가는 행동들을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의 빈자리에서 루머가 생산 되고 많은 의심들이 피어납니다. 

의심과 루머가 생산되지 않게 하려면 루머를 퍼트린 사람을 찾아서 수사 하겠다는 엄포를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구심을 치료할 수 있게 정부와 해경과 군이 하는 일을 상세하게 수시로 브리핑을 통해서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브리핑도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잠수부들이 선실에 진입했다 안했다. 공기를 주입했다 안했다 식으로 거짓말과 번복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정부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알권리라는 소명의식을 가진 기자들이 발로 뛰면서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줘야 합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정부의 목소리 역할도 알 수 있으며 반대로 실종자 가족 혹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고 발생부터 지금까지 큰 언론사들은 같은 방송화면과 똑같은 이야기만 수시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마치 돌림노래를 하는 듯한 모습이죠. 뭐! 이런 풍경은 어제 오늘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의 기자들을 국민들은 기레기라고 합니다. 

쓰레기 기자의 약자인 기레기는 한국 기자들의 또 다른 별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예상 했습니다. 사체가 인양 되면 그 사체 이송 과정을 진치고 앉아서 카메라 플래시 터트리면서 촬영할 것을 예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 언론들의 쓰레기 같은 행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면 언론은 블랙 카펫을 깔고 그 장례식 장 앞에서 어떤 연예인이 조문을 왔는지를 빠짐 없이 찍고 심지어 인터뷰까지 시도를 합니다. 해외 언론드 그런 장례식 풍경을 담긴 하지만 먼 풍경으로 담지 장례식장 문 앞에서 촬영하지 않습니다. 이게 해외 언론과 국내 언론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리고 봤습니다. 엊그제 고대안산병원으로 사망자가 들것에 실려서 들어가자 플래시가 파파팍 터지는 모습에 분노를 참지 못하겠더군요. 그게 국민의 알권리입니까?

아니 어떤 국민이 사망자가 이송 되는 장면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한국 기레기들은 정말 사람들이 아닙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자기들의 자식이 죽어서 장례식장이나 병원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런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고 국민의 알권리입니까?

이에 유가족들이 카메라 치우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촬영하면 카메라 박살 내겠다는 소리에 카메라를 내려 놓기는 했지만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바른 나라는 바른 언론이 만듭니다. 세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꼬집는 언론이 있어야 그 나라가 바로 섭니다. 특히나 세상을 보는 창인 언론이 썩어 있으면 그 나라는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아무리 좋아도 기레기들이 가득한 언론이 악마의 편집과 곡해하는 보도로 세상의 시선을 흐려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라는 독재자가 장기 집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가 거대 언론사 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한국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앞으로 보십시요. 언론들이 어떻게 정부의 입이 되어서 이번 사고를 선장만 악인으로 만들고 끝나는지를요. 

사고는 선장이 냈다고 하지만 사고를 수습 하는 과정에서의 많은 정부의 실책과 과오를 어떻게 감싸고 덮거나 모른척 하는 지를 우리는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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