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많은 미술전과 사진전을 찾아서 보면 볼수록 예술에 대한 경외심 보다는 예술은 그냥 돈 많은 사람들의 유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특히, 돈 많은 컬렉터들을 위한 알듯 모를 듯한 예술 작품들은 아무리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대중들은 이런 현학적인 예술품을 외면하고 감히 쓰레기 같다는 말을 합니다. 

이 쓰레기 같다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현대 예술은 르네상스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과 달리 예술품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기본 지식과 기본 소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브제라고 하는 가치의 전이를 주 재료로 삼는 현대 예술이 꽤 많아졌는데 이 오브제라는 개념이 일반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제이지만 그 일상제의 본래의 기능을 제거하고 다른 의미나 생뚱맞은 장소에 배치를 함으로써 가치가 생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 예술을 몰라도 알아도 누구나 그 그림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 예술은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아닌 아는 사람만 아름답다고 여기는 시대가 되었고 이런 모습은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것이 아닌 일부 예술 매니아만 느끼고 감동하게 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습니다. 


예술을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다고 증명한 '존 무니즈'를 다룬 다큐 '웨이스트 랜드'

브라질 출신의 성공한 예술가인 '빅 무니즈'는 아주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입니다. 그는 물질은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면서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고 그 모자이크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판매하는 예술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점묘화처럼  가까이서 보면 하나 하나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제입니다. 그 일상제를 보면서 점점 뒤로 물러서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 되죠.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고 전체가 어떤 부분의 결과물이 되는 프렉탈 같은 느낌이 듭니다. 

빅 무니즈는 소재에서 영감을 찾는 예술가입니다. 어느 날 그는 쓰레기라는 소재를 통해서 예술을 재현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이 결심은 많은 고민을 가지고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 쓰레기를 수집해서 모자이크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웨이스트 랜드'는 이런 '빅 무니즈'의 거대한 시도를 2년 동안 묵묵히 카메라로 담은 루시 워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입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어지듯 도시의 그림자를 담은 '웨이스트 랜드'

빅 무니즈는 반대와 우려에도 무릅쓰고 쓰레기를 소재로 한 예술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출신지인 브라질의 가장 큰 쓰레기 매립장으로 카메라를 들고 갑니다. 다큐는 화려한 브라질의 삼바 축제를 보여주면서 시작을 합니다. 브라질의 최고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바로 그 삼바 축제 후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보여줍니다. 그 쓰레기들은 어디로 갈까요?

누구나 그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 줄은 압니다. 그러나 그 쓰레기가 어떻게 분리 되어서 우리에게 다시 오는 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다큐 '웨이스트 랜드'는  도시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바로 다음에 쓰레기를 보여줌으로써 그 그림자의 짙음을 아주 잘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빅 무니즈가 가는 쓰레기 매립지에는 분리 수거가 된지 않은 쓰레기를 잔뜩 싣고 온 쓰레기 차가 쓰레기를 쏟아내면 그 쓰레기 중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와 플라스틱 페트병이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리 수거해서 재활용 업체에 판매해서 돈을 버는 
카타도르가 있습니다. 

빅 무니즈는 도착하기 전에 냄새와 병에 대한 두려움과 마약에 찌든 인생 밑바닥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도착합니다. 걱정이 앞서는 현장에서 뜻밖에도 그 곳에서 생활을 하는 '카타도르'들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밝고 맑습니다. 


카메라 저리 치우지 못해! 라는 말이 들릴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카타도르들은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고 카메라를 든 빅 앞에서 포즈를 취해 줄 정도로 여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밝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우울해 있고 삶의 무게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일방적인 희망 심기를 통해서 희망을 노래합니다. 저는 이런 류의 다큐를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연탄 배달을 해주고 기념 촬영을 해서 난! 이렇게 착한 사람이라고 인증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큐 '웨이스트 랜드'도 이런 류의 다큐일 줄 알았고 뻔한 희망 강제 심기의 다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달리 다큐는 이들의 생활을 밀착 인화를 하면서 그들이 결코, 희망이 없고 우울해하며 힘들어 하는 모습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가난한 사람도 힘들지만 고통을 참고 일한다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의미 만을 담았다면 전 이 다큐가 훌륭한 다큐라고 결코, 말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건 자기 기만적인 혹은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 대한 자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웨이스트 랜드는 그런 평이한 시선이 아닌 이 '카타도르'들도 힘들지만 형편에 맞게 살면서 그 안에서 질서가 있고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나 이렇게 평생 살고 싶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없고 불안한 삶에 대한 고민과 고통을 다큐는 담고 있습니다. 



형편대로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카타도르'의 삶을 조명하다

우리는 장애인들을 장애우라는 일방적인 시선(장애인은 무조건 우리 친구다라는 시선)를 통해서 장애인들의 주체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존재로 인식을 합니다. 

빅은 이 쓰레기 매립지에서 쓰레기를 뒤져서 먹고 사는 카타도르를 측은심이나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빅은 헬기에서 이 쓰레기 매립지를 내려다 보면서 쓰레기 더미에서 일하는 사람도 쓰레기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헬기에서 내려와 그들의 모습을 근접 촬영을 합니다. 그리고 그 근접 촬영을 하는 이유가 위에서 내려다 보면 볼 수 없는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카타도르들은 예상과 달리 높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쓰레기라는 남들이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리는 존재이지만 이 쓰레기에서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제품을 분리해서 매립량을 줄이고 재활용 제품을 찾아서 다시 도시로 돌려 보내는 직업 자체에 대한 높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카타도르는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행동 보다 미천한 직업이지만 자신들은 정정당당하게 노동을 하고 돈을 번다고 자긍심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빅은 자신과 함께 쓰레기 예술을 할 카타도르를 섭외 합니다. 이 카타도르 세계에서도 취향과 개성이 있습니다. 

한 카타도르는 책을 수집하는 책 전문 분리 수거자가 있고 한 카타도르는 생수 플라스틱 페트병만 수거하는 카타도르가 있습니다. 종이를 발견하면 종이만 분리 수거하는 카타도르에게 알려 주는 등 큰 유기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사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편견을 천천히 천천히 무너뜨립니다. 

'웨이스트 랜드'는 2개의 이야기가 존재 합니다. 
하나는 카타도르의 삶과 또 하나는 이들에게 예술에 대한 체험을 제공하고 그 예술 체험을 통해서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피어난 예술

이 다큐는 2개의 비판이 있습니다. 하나는 함부로 카타도르를 평가하고 편견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비판과 함께
'배타적이고 제한적인 순수예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빅 무니즈는 유명한 대학을 나오고 거들먹 거리는 예술가들을 비판합니다. 그가 이렇게 비판하는 이유는 빅 본인이 브라질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술이 왜 화려하기만 하고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합니다
그래서 그가 쓰레기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쓰레기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쓰레기 더미에서 사는 삶들도 예술을 느끼고 즐기고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웨이스트 랜드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것은 이 부분입니다. 예술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라고 말하는 현대 예술계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면서 하층민이지만 이들도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실제로 예술가로 변신 시켜주는 과정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빅은 카타도르들을 섭외해서 그들을 모델로 삼아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대형 캔버스 위에 투영한 후에 그 사진을 밑그림으로 쓰레기로 만든 모자이크 작품을 만듭니다. 


모자이크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이 '웨이스트 랜드'에서 가장 큰 감동을 느끼게 하는 포인트입니다. 보통 이런 예술 작품들은 가난한 사람을 모델로만 삼고 그걸 추상화 해서 돈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빅은 달랐습니다. 빅은 이들을 고용해서 직접 작품을 만드는데 적극 참여하게 합니다. 
위 사진 속 쓰레기들은 카타도르들이 직접 쓰레기 매립지에서 수집한 쓰레기들이고 이 쓰레기들을 이들 스스로가 작품에 배치를 하면서 작품 제작에 참여를 합니다.  카타도르들은 이 과정이 힘들 과정이지만 난생 처음으로 예술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팔 부분은 내가 한 거야! 이 머리는 내가 한 거 기억하니? 맞아! 니가 했잖아~~ 라는 카타도르의 대화에 제 마음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거구나! 이런 부분 때문에  해외 영화평론,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극찬을 하고 해외 유수의 선댄스나 베를린 영화제 같은 곳에서 수상을 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술이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감동 다큐 '웨이스트 랜드'

시니컬한 시선으로 봤습니다. 이런 다큐들의 기승전결은 뻔하거든요. 하층민들을 변화 시키거나 쓰레기 매립지에 희망을 심어서 그들이 아닌 그들의 삶을 통해서 이런 삶도 있는데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정말 쓰레기 같은 다큐를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달리 '웨이스트 랜드'는 그런 시선을 일부 담긴 하지만 전체적인 시선은 그 보다는 예술이 어떻게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담고 있습니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빅과 아내는 이런 고민을 함께 합니다. 
이렇게 카타도르가 만든 작품을 판매해서 큰 수익을 내서 그 돈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삶을 변화 시키는 것은 무책임 하다고 합니다. 작품 제작이 끝나고 큰 돈을 만지고 예술을 체험한 후 그들이 다시 카타도르로 돌아가서 느끼는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면 그건 아주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아내는 지적합니다.

이에 빅은 아내의 이런 지적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변화하는 것이 있고 삶이 변화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고 되묻죠. 
여기서 이 다큐의 고민이 흘러 나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촬영 대상의 삶에 개입해야 하는가?
어떻게 개입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객관성을 믿지 않는다. 촬영하는 매 순간 마다 
관찰자의 역설을 관찰한다. 당신의 존재가 모든 것을 변화 시키고, 여기에서 실수란 있을 수 없다.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아 하는 것이다. 

감독 - 루시 워커-

이런 고민을 어떻게 풀까 궁금 했습니다. 2천년 대 중반 한 일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쓰레기 매립지에서 쓰레기를 분리 수거해서 사는 동네에 찾아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호텔에서 목욕을 하고 푹신한 침대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제공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프로그램을 아주 심할 정도로 비판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예능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닌 측은심 유발 도구로만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자들의 체험을 하게 한 후에 아이들을 다시 쓰레기 매립지 동네로 보내면 그 아이들이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까요? 물론, 그 결과는 아이들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삶을 체험하면서 이 가난한 동네에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크게 마음만 먹으면 그 마을을 떠날 수 있다고 쳐도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예능 프로그램을 아주 심할 정도로 질타를 했습니다. 

이 부분은 이 다큐 '웨이스트 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예술적인 체험을 통해서 큰 돈을 벌게 된 후 다시 쓰레기를 줍고 살수 있을까요? 이 부분도 다큐 '웨이스트 랜드'는 아주 감동스럽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결과는 말하지 않겠지만 예술을 체험하면서 그들이 변하거나 변하지 않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카타도르들이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이 자존감은 큰 너울이 되어서 브라질 전체를 변화 시킵니다. 전 이 부분에서 두번 째 감동을 받습니다. 나비의 날개 짓이 태풍을 몰고 오듯 그들의 자존감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모습에서 두번 째 감동으로 눈시울이 촉촉해졌습니다. 



소리가 모여서 음악을 만들 듯.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제가 이 영화를 '빅 무니즈'를 다룬 다큐라고 한 이유는 이 다큐에서 빅의 역할이 아주 큽니다. 카타도르의 삶의 변화를 이끈 것도 빅이고 모두 빅에게 감사해 합니다. 

저는 빅의 심성에 감동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참 심성이 곱디 곱지만 그 중에서도 빅은 더 고운 사람 같습니다. 
배운 것이 많다고 거들먹 거리는 동료 예술가를 피판하고 예술의 배타적인 모습을 비판합니다. 카타도르를 예술 도우미가 아닌 친구로 생각하고 무조건 돈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닌 함께 예술을 만들어가면서 철저하게 눈 높이를 카타도르에게 맞춥니다. 

빅은 말합니다. 가난 할 때는 무조건 물건을 사서 쌓기만 했는데 돈이 풍족해지니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에 대한 관심과 함께 자신이 경험한 예술적인 경험을 다른 브라질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런 착한 심성이 다큐 내내 잔잔하게 흐르고 이런 빅의 마음 씀씀이가 큰 반석이 되어서 웨이스트랜드라는 버러진 땅에 꽃을 피웁니다. 브라질 사람들도 잘 모르는 카타도르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남이 쓰다 버린 물질을 쌓아 올려서 예술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빅은 소리가 모여서 음악이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의 작품도 아주 큰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쓰레기입니다. 
브라질의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다들 똑같은 점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의 도시지만 가까이서 보면 고통스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죠. 우리는 가까이 가서 보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거리두기를 통해서 세상을 스치듯 바라봅니다. 더 다가가서 보게되면 비극을 보게 되고 비극을 본 후 일말의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목격의 책임이라고 할까요? 빅은 과감하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카타도르를 밀착인화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작품에 투영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쓰레기와 구분이 안되는 카타도르들이 빅과 함께 작품의 부분을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그 쓰레기라는 부분이 모이고 모여서 멀리서 보면 전체라는 부분의 합 이상의 감동을 전해 줍니다. 오랜 시간 함께 만드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탄성이 자아낼 정도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의상대사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 떠오릅니다. 
부분은 전체를 담고 전체는 부분을 담는다. 부분이 전체이며 전체가 부분이다. 빅 무니즈의 작품은 그런 동양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빅의 작품은 멀리서 한 번(전체), 가까이서 한 번(부분) 봐야 오롯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다큐 웨이스트랜드는 예술에 대한 비판과 예술의 힘을 씨줄로 카타도르의 삶을 날줄 삼아 만든 아주 탄탄한 감동 다큐입니다. 
2010년 제작한 다큐가 늦게 찾아온 것에 대한 불만만 빼면 아주 빼어난 감동 다큐입니다. 



웨이스트 랜드 (2014)

Waste Land 
10
감독
루시 워커
출연
빅 무니즈
정보
다큐멘터리 | 브라질, 영국 | 99 분 | 2014-04-03
글쓴이 평점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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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녀석 2014.03.30 1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야말로 똑같은 심정이였네요.
    걱정했던 빅무니즈가 실제로 현장에가서 걱정을 날려버리듯이
    이 다큐를 그닥 크게 보지않았는데,
    직접보니,,, 너무나 엄청난 다큐였다는 사실을 느낀것처럼요 ㅎㅎ

    • Favicon of http://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14.03.30 2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빅 무늬즈라는 예술가에 감동 받았어요 사람이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그의 예상과 내 예상과 달리 카타도르들도 참 사람들이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