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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지구를 지켜라 10주년 상영전에서 장준환, 신하균이 말하는 영화 뒷이야기들

by 썬도그 201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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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딱 망했습니다. 정말 쫄딱 망해서 영화 평론가는 심혜진의 씨네타운 라디오 방송에서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오동진 평론가는 1주 전에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소개하면서 평단의 평은 물론, 대중적인 재미도 높다면서 '지구를 지켜라'를 극찬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명작이라고 칭찬을 했는데 영화는 개봉 1주일 만에 영화관에서 간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전국 관객 7만 3천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보이고 바로 DVD 시장과 다운로드 시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럼 '지구를 지켜라'가 망할 만한 영화이고 졸작이었냐? 그건 아닙니다. 단언컨데, 한국 영화 중에 가장 저주 받은 걸작 중에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를 지켜라를 보면  팬이 될 수 밖에 없다

입소문만 듣고 봤습니다. 괴작 반열에 오를만 한 독특한 영화라는 소리에 봤습니다. 영화 내용은 똘기 충만해 보이는 동네 바보형 같은 병구(신하균 분)가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한다는 헛소리를 떠들도 다닙니다. 그런데 병구는 그냥 미친 것이 아닌 단단히 미쳤는지 강 사장(백윤식 분)을 납치해서 가둡니다. 

병구는 순이(황정민 분)와 함께 자신의 아지트로 강 사장을 납치 감금 한 후에  외계인들과 통신을 할 수 있다면서 머리를 박박 깎아 버립니다. 때밀이 수건으로 발등을 긁어서 진물이 나오게 하더니 그 위에 물파스를 발라서 고문을 합니다. 처음에는 별 또라이 같은 놈이 다 주인공이네 하고 낄낄 거리면서 봤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후반에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낄낄 거리면서 봤던 웃음은 사라지고 멍한 눈으로 병구의 그 깊은 고통에 눈을 돌렸습니다. 병구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병구가 동네 바보 형으로 살 수 밖에 없었는 지에 대한 연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연민의 눈물은 지금도 흘리고 있습니다. 

장준환 감독의 한국필름아카데미 졸업작인 단편 '2001 이매진'의 장편 버전 같은 '지구를 지켜라'는 병구에 대한 연민이 비처럼 내리는 영화이자 한국 영화 최고의 반전 영화이기도 합니다. 재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한 편만 보고도 장준환 감독의 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감독 장준환, 배우 신하균이 말하는 영화 뒷이야기들

지난 2013년 12월 29일 일요일 오후 3시에는 2003년 개봉작 '지구를 지켜라' 10주년 기념 상영회가 한국영상자료원 영화관에서 상영을 했습니다. 이날은 장준환 감독의 '2001 이매진'과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 '화이'를 무료 상영 했습니다.


오후 3시 '지구를 지켜라'의 상영 후에는 감독, 배우와의 대화 자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큰 인기는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오판으로 인해 '지구를 지켜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명작이긴 하지만 설마! 매진일까 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크게 틀렸습니다. 이날 오전 11시에 도착 했는데 이미 매진이 되어서 표가 없다고 하네요. 그래도 장준환 감독을 꼭 보고 싶어서 상영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친절한 영상자료원 직원분이 한 30~40명이나 되는 긴 줄을 보면서 모두 들어갈 수 있고 상영 후에 나가는 분들 자리에 앉아서 GV를 참석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가지 않고 이 GV를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제가 앞 줄에 있어서 중간에 빈자리에 착석하고  GV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장준환 감독의 아내가 문소리라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객석에는 문소리도 있었습니다. 정말 빈자리가 없는 모습에 장 감독은 약간 놀라워 하면서 동시에 기뻐 하더군요. 이런 풍경을 '지구를 지켜라' 상영 당시에는 보지 못했는데 10년이나 지나서 지리적 위치도 좋지 않은 상암동까지 온 300명이 넘는 관객의 모습에 무척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입니다.


진행은 '지구를 지켜라'의 조감독이었던 노덕 감독이 진행했습니다. 노덕 감독은 2013년 개봉작 '연애의 온도'를 연출 한 감독입니다. 이 '연애의 온도'도 평론계에서는 아주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저도 기회 되면 보고 싶네요.

노덕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의 조감독이어서 누구보다 당시 촬영장의 분위기나 뒷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GV가 시작 되자 인삿말을 하면서도 많은 관객에 감사를 드린다는 말로 시작 했습니다. 배우 신하균은 재미있게도 이 영상 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2번째로 보네요. 2011년인가? 박찬욱 감독 회고전에서 '복수는 나의 것' 상영 후에 신하균, 송강호, 박찬욱 감독과 함께 GV를 했었는데 참 말이 적은 배우입니다.

말 주변이 정말 없어도 너무 없는 데 이번에 보니 그래도 곧 잘 말합니다. 신은 신하균에게 얼굴과 연기력을 내렸지만 말 주변은 주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이번 GV에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먼저 치고 나가네요.  저 끝에 앉은 노덕 감독님은 당시에 너무 말주변이 없었는데 이렇게 말을 잘하게 될 줄 몰랐다는 소리를 합니다. 





촬영 당시 월드컵 경기를 할 때 같이 응원하던 모습 세트장이 홍수로 물에 잠겨서 제작을 중단 했다가 다시 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아픈 이야기지만 한 관객은 망했을 때 느낌도 물어 봅니다. 이 지구를 지켜라는 포스터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을 하면서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상황 설명을 부탁하자 자기는 포스터 부분이나 마케팅 부분은 관여하지 않아서 잘 몰랐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백윤식 선생님이 포스터에 쪼막만하게 나온 것에 화를 낸 모습을 소개하면서 이런 컬트적인 영화가 요즘 한국 영화로 나오기 힘든 모습을 아쉬워하면서 당시 싸이더스 대표였던 차승재 대표가 있었을 때 좋은 한국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면서 제작자의 중요함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외에도 영화 속에서 나온 원숭이는 신하균이 원숭이 탈을 쓰고 연기를 했다고 하네요. 

돌아보면 그 2천년 대 초반 기가 막히는 한국 영화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차승재 대표의 역할이 아주 컸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나 '올드 보이'도 다 차상재 대표의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제작자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요. 요즘은 몸 사리는 제작자가 많아서 안전빵 영화들만 만듭니다. 그나마 배급사 NEW가 좋은 영화를 잘 발굴하고 지원을 해줍니다. 


2002년 제작 당시의 장준환 감독의 모습이네요. 이 당시는 머리 염색이 유행이었습니다. 

신하균이  니가 @#$#$$#% 라는 외계인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대사에 대한 뒷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대본에는 외계어로 써 있었고 신하균이 가이드를 받고 창조해 낸 단어입니다.  능청과 아이러니 그리고 기괴함과 그로테스크함과 유머가 공존하는 맛깔나는 SF영화 지구를 지켜라.  저는 극장안에 20대 초, 중반의 관객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2003년에는 저들이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이 영화를 보고 이 먼 곳까지 찾아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의문은 관객들의 질문에서 풀렸습니다. 중학교때 봤다는 관객 얼마 전에 영화에 대한 소문을 듣고 봤다가 팬이 되어 버린 영화팬 등 다양한 사람이 이 명작을 알아보고 찾아보고 있습니다. 보기 드물게 망한 영화임에도 팬 카페가 생긴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 영화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SF 형식을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한국 사회를 넘어 지구인을 관조적이면서도 연민의 시선은 이 영화를 잊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호불호가 좀 있긴 하지만 다양한 영화를 보는 영화 팬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장준환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사회가 병구라는 개인에게 어떠한 폭력을 가하는지를 투영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폭력으로 인해 미친 사람 취급 당하는 병구의 서글픔이 아직도 아른거리네요.  


"2000년대 가장 인상적인 한국영화 감독 데뷰작" -이동진 영화 평론가-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 이후에 긴 방황을 하다가 2013년 화이로 다시 스크린에 복귀했고 또 한 번의 뛰어난 이야기를 스크린에 뿌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고 하네요. '화이'도 좋은 영화이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그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이런 뛰어난 상상력을 담은 영화를 이제는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네요.  

장준환 감독이 그런 상상력을 펼쳐도 그걸 제작사에서 받아주질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지켜라'가 더 애착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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