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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용의자, 직선만 있고 곡선은 없었던 최강 액션 활극

by 썬도그 201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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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대 초 중반 한국은 조폭영화만 줄기차게 만들었습니다. 조폭이 학교를 하고 조폭이 사찰에 갔습니다. 무식한 조폭들의 코메디가 자기 복제를 하듯 엄청나게 만들어졌고 결국은 자기 복제 끝에 공멸하고 맙니다. 이후 다양한 소재의 한국 영화가 나오다가 2012, 2013년에 들어서는 간첩이 등장합니다. 

올해 초에 개봉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베를린' '붉은 가족'은 간첩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조폭 영화 보다는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코메디 영화도 있고 드라마도 액션 영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해에 이렇게 많은 영화가 간첩을 주인공으로 하다 보니 영화 '용의자'는 개봉 하기도 전에 또! 간첩이야? 라는 식상함에 대한 한탄이 들려옵니다.

왜? 간첩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이렇게 많이 나올까요?
그 이유는 이 간첩이 갖는 드라마성과 액션성 때문입니다. 먼저 간첩이라는 존재는 스파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적이 될 수 있는 특수성과 특수무술을 몸에 익힌 액션성, 북에 두고 온 가족이라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녹여 들어 있는 아주 매혹적인(?) 소재입니다. 


착하게 살던 간첩 출신의 탈북자, 누명을 쓰다

간첩이 주인공이 된 영화 대부분은 간첩이 착합니다. 아니 선한 역할을 합니다. 아니 우리 입장에서는 살인을 하는 악인이지만 간첩의 시선으로 담기다 보니 선하게 그려집니다. 악이라고 해도 그들 입장에서는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살인과 폭력을 행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살기 위해서 뛰어난 무술로 자신을 방어해야 합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다른 간첩 영화들은 애먼 남한 사람이나 하다 못해 남한 내 고위직을 암살하지도 않고 갑첩들끼리 총질을 하거나 다른 간첩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부 갈등이나 간첩 VS 간첩을 다루는 이유는 이 간첩 영화의 한계이자 어쩔 수 없는 설정입니다. 진짜 간첩처럼 남한 내 주요 요인을 암살했다가는 남한 관객들이 주인공 간첩에게 어떠한 몰입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동철(공유 분)도 전직 간첩이지만 탈북을 하고 남한에서 대리운전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 충성을 했지만 북한 내 권력 구도 변경으로 인해 아내가 북한에 의해 사살당합니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채 북한의 고급 정보를 국정원에 밝히면서 남한에서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동철은 북한이 고향인 박회장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회유를 받습니다. 박회장은 대북 경협 사업을 하면서 북한과의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북한에 전해 줄 선물이 있다면서 다음 날 평양으로 갈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괴한들이 침투해서 박회장을 독살 합니다. 독살한 범인을 손으로 때려 잡은 지동철은 경찰에 신고에 신고 하지만 찾아온 경찰이 이상하게도 지동철을 살해하려고 합니다. 이때부터 지동철은 뒤에 큰 세력이 있음을 알고 쫒기게 됩니다.

국정원은 이 지동철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를 추적합니다.


지동철을 쫒기 위해서 국정원은 지동철과 인연이 있는 민세훈 대령을 호출합니다. 방첩 전문가인 민세훈 대령은 홍콩에서 지동철과 대결을 한 적이 있었고 그 악연 때문에 민세훈은 지동철이라는 소리에 쏜살 같이 달려와서 지동철 체포 작전을 진두지휘합니다.


영화는 이후에 상당히 복잡한 스토리로 진행 됩니다. 그러나 영화를 많이 본 분들이나 눈치 빠른 분들은 영화 중간에 대충의 그림이 다 그려집니다. 또한, 지동철과 민대령 사이의 끈끈함도 눈치를 채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쫒기는 지동철은 또 누군가를 쫒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아내를 죽인 또 다른 북한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누군가를 쫒는 용의자를 쫒는 국정원의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최강의 액션을 보여준 용의자

미리 밝히면, 한국 영화 최고의 액션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액션의 다양성이나 긴장감 그리고 규모, 특히 카 체이싱은 최강입니다. 특히 계단에서의 카 체이싱은 손에 힘이 들어가게 할 정도로 흥미롭고 짜릿하면서도 창의성이 좋습니다. 

영리하게도 모형헬기를 이용한 부감샷을 액션 전에 넣으면서 액션이 어디서 어떤 규모로 일어나는지를 대충 보여줍니다. 이 스케치 장면을 녹여낸 모습은 아주 적절했습니다. 또한, 일상에서의 대규모 액션을 보는 느낌도 아주 강합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카 체이싱을 하는 장면에서 행인은 숙련된 액스트라가 과장된 동작으로 차를 피하는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용의자는 일상에서 급작스런 액션이 진행 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서 하교 길의 중학생들을 보여주는데요. 그 중학생들을 지나치면서 카 체이싱을 하는 장면이나 계단에서의 카 체이싱때 한 남중생이 전봇대 뒤로 숨는 모습 등의 디테일이나 일상적인 모습에서 일어나는 액션은 액션의 사실감을 더 증폭 시킵니다.


총격씬도 대단합니다. 특히 공유가 건물 지붕위를 달리면서 터지는 총알의 흔적들은 허리우드급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격투도 어디서 많이 본 듯 합니다만 아주 박진감이 넘칩니다. 용의자의 무술은 러시아 특공무술인 시스테마와 절권도를 혼합한 액션이라고 하네요. 좁은 공간에서 주변 사물을 이용한 액션은 영화 베를린이나 이런 첩보 액션 영화의 거대한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본 시리즈'의 격투와 비슷하다는 점이 아쉽지만 액션 자체는 아주 박진감과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액션에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먼저 전체적인 액션 스타일이 어쩔 수 없이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합니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흔들리는 핸드헬드 스타일입니다. 이 핸드헬드 스타일은 관객의 긴장감과 심박수를 올릴 수는 있지만 정확한 그림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무슨 액션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액션 장면에서도 카 체이싱 장면에서도 어디서 어디까지 차를 몰고 가는지 주변 풍경은 어떤 지에 대한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지 못해서 액션의 규모를 갸름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고 해도 가끔은 흔들리지 않는 장면을 몇 개만 넣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계단 카 체이싱 장면에서의 헬기 부감샷은 참 좋았습니다. 그런 장면을 스케치 영상으로 넣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용의자는 한국 최강의 액션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런닝맨'이 액션 장면에도 CG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 용의자는 CG를 이용했겠지만 어디서 사용했는지 모를 정도로 CG 영상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영상을 보여줍니다. 잘은 모르지만 CG도 많이 사용하지 않았을 듯 하네요. 



동적인 액션과 달리 정적인 캐릭터들은 아쉽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액션과 달리 상당히 단선적입니다. 전직 여기자는 시종일관 지동철을 이해하고 감싸는 무한 희생을 합니다. 민세훈 대령도 한 번 틀어지자 계속 그 방향으로만 달립니다. 조성하가 연기한 김석호라는 인물이 그나마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게 합니다. 재미있게도 조성하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 동창생에서도 악역으로 나오던데요. 이 영화에서는 포텐이 터지네요.  그러나 주인공 지동철이라는 인물도 입체적이지 않고 단선적입니다. 이 영화가 액션은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주고 싶지만 주인공인 지동철에 감정 이입이 크게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유기적이지 못합니다. 
지동철이 달리는 이유가 단지 복수라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은 많은 관객의 설득력을 높혀주지 않습니다. 복수도 분명 짜릿함이 있긴 합니다만 맹목적인 모습을 보이면 왜? 라는 의문이 듭니다. 영화 후반에는 지동철의 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아예 처음부터 배치 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지동철이 달리는 이유의 근거가 좀 더 공감대가 높은 것으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네요.  액션 영화가 액션만 강하다고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액션이 당위를 가진다면 그 액션은 더 큰 폭발음으로 다가옵니다. 탄탄한 드라마라는 반석 위에서 펼쳐지는 액션이 더 값지게 보이고 멋지게 보입니다.  그 드라마가 가족이라는 보편성을 띄면 식상한 소재이긴 하지만 연말 가족 관객들에게는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영화 용의자의 스토리도 꽤 흥미롭긴 합니다. 아주 나쁜 스토리도 아닙니다. 다만, 워낙 뛰어난 액션을 많이 보여주기에 상대적으로 스토리가 미약해 보입니다. 특히나 공유 같이 눈이 큰 배우가 영화 중간 중간에 눈시울이 그렁 그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적인 요소를 보였다면 어땠을까요?  시종일관 로보캅 같은 표정으로 뛰어 다니니 구릿 빛 육체에 반할지는 몰라도 지동철이라는 인물 자체에 큰 감정 이입은 안 됩니다. 

원신연 감독이 공유 활용 법을 잘 모르네요. 멜로도 참 잘하는 공유였다면 좀 더 신파적인 요소를 깔고 갔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공유의 뜨거운 눈물에 제 눈시울도 붉어지더군요. 출발 총성이 울려서 무조건 달리는 달리기 선수와 관객들이 1등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를 미리 알고 달리는 선수와는 관객들의 감정 출발이 다릅니다. 

용의자는 액션이 먼저 달리고 중반 이후에 감정이 출발 합니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액션만 봐도 돈 아깝지 않고 지루하지 않는 영화이고 스토리도 그런대로 탄탄합니다. 평균 이상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연말 볼 영화도 많지 않은데 꼭 보셨으면 하네요. 한국도 이 정도까지 액션을 정교하게 만들다니, 정말 일취월장했네요. 특히, 도심 속 액션은 압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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