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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달빛처럼 은은한 빛이 나는 책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by 썬도그 201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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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타박은 독자들에게서도 자주 듣는다. 내 소설을 읽고 나면 며칠은 마음이 가라앉아 평상심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즐거운 이야기는 쓸 계획이 없다고 대놓고 묻기도 한다. 그때마다 좀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상하네. 내가 쪽지처럼 숨겨둔 유머들은 왜 발견되지 않는 거지? 속이 상하고 그랬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글쓰기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그쪽으로 옮겨갈 수는 없다. 

<달에게 들여주고 싶은 이야기 작가의 말 중에서>

신경숙의 소설은 잔잔한 슬픔과 깊은 슬픔이 있다. 신경숙의 소설은 다 읽고 나면 슬픔은 한 입 베어 문듯 하다. 그 슬픔의 느낌이 내 영혼을 얼얼하게 만들고 한 동안 깊이 깊이 뒤척이고 사색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신경숙의 글을 읽다 보면 작가와 함께 호흡을 하는 착각을 들게 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한숨을 쉬면 나도 한숨을 쉬고 소설 속 주인공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 내 희미한 기억을 떠올린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청순한 표정의 소녀처럼 글을 쓰는 신경숙의 소설은 격정적인 슬픔이 아닌 조금씩 흐르는 눈가의 눈물처럼 영롱하고 맑은 슬픔이다.
슬프고 싶을 때는 신경숙 소설이 좋다.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20대 시절에 체득했고 지금까지도 신경숙의 소설이 나오면 항상 관심 갖고 찾아보게 된다.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의 그 가슴 시린 이야기는 '엄마를 부탁해'에서 1막이 완성 된 듯 하다. 신경숙의 이런 가녀리고 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한숨 같은 소설들의 공통점은 다 읽고 나면 먼 여행을 떠났다고 돌아논 느낌이 든다. 그게 결코, 밝고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이런 느낌을 나만 갖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무거운 소설 보다는 좀 더 가볍고 짧고 유머가 있는 신경숙의 글을 만나고 싶었다. 이런 독자들의 염원 때문이었는지 신경숙 답지 않게 아주 짧고 유머가 있는 풍경을 스케치한 책을 출간 했다. 

남몰래 달에게만 부끄럽게 말하는 일상의 짧은 이야기를 담은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 책은 저자가 밝혔듯 신경숙 다운 책은 아니다. 신경숙의 글쓰기는 항상 일상에서 느끼는 보편적인 공감과 슬픔을 주제로 한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신경숙 문학의 방향성과 다르게 유머러스하면서도 가슴이 아리면서도 동시에 은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아주 짧은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신경숙 소설을 읽어 본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이 책속에 담긴 26개의 짧은 이야기는 오롯이 창작 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소설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난히 신경숙은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잘 옮기는 작가이다. '엄마를 부탁해'가 좋았던 이유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상상에서 끄집어 낸 이야기도 많아서 좋았다. 하지만, 신경숙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이고 이 책에 담긴 26개의 이야기도 귀동냥 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윤색이나 각색을 했을 것이라 느껴진다. 그만큼 이 책은 아주 자연스럽다. 책을 읽고 넘기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물이 흘러가듯 부드럽게 부드럽게 읽혀진다. 책장을 넘기는 무게도 아주 경쾌하고 가볍다. 이야기들은 자극적이지 않다. 격정이나 작위적인 농담도 없다. 그냥 피식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나쁘게 보자면 너무 심심하고 맹맹하다.  좋게 보자면 박장대소는 없지만 입가에 미소를 하루 종일 지을 수 있게 하는 유머들이 많다. 
고궁에서 이 책을 읽다가 15분도 안 걸리는 짧은 이야기 하나에 책장을 덮고 낙엽이 떨어진 고궁을 서성이게 했다. 
그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여동생 J가 미국을 떠난 후 희경씨는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온 전화를 받는다. 별 말씀 안 하시고 안부를 나누고 나면 두 모녀는 할 말이 없어서 전화를 끊는다. 무슨 연유가 있기에 갑자기 매일 아침 전화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에 여동생J는 알고 있겠지 하고 전화를 건 희경씨, 
여동생은 자기가 서울에 있을 때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전날 본 드라마 이야기를 어머니와 신나게 했다는 말에 희경씨는 어머니가 즐겨 보는 드라마를 본 후 다음날 아침 여김없이 울리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드라마 이야기를 한바탕 한다. 희경씨는 배가 툭 나온 탤런트 주현이 뭐가 좋냐고 말하자 목소리를 높힌 어머니는 그 나온 배가 인격이라면서 맞받아친다.
그렇게 두 모녀는 안부만 묻고 끊던 전화통을 붙들고 한참을 떠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발견한 희경씨에 대한 이야기는 '엄마를 부탁해'에서 주인공이 잊고 살았던 엄마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죄스럽고 고마운 감정을 잘 담고 있다. 이런 짧은 이야기들 중에 별처럼 빛나는 이야기도 있지만 유머 코드가 맞지 않아서인지 허무한 이야기도 있다. 같은 영화라고 해도 그 나라마다 문화가 달라서 웃음 포인트가 다르듯 사람마다의 경험과 나이에 따라서 웃음을 주는 이야기가 다를 듯 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슬프게 만들긴 쉬워도 모든 사람을 웃기게 만들긴 어려운가 보다. 

26개의 이야기 중에 약 반 이상은 날 미소 짓고 하거나 웃음을 머금게 하거나 깊은 공감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했다. 하지만, 몇몇 이야기는 별 느낌을 받지 못했다.'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쁜 일상 중간에 읽는 것 보다는 퇴근 후에 일상을 정리한 후 잠자기 전에 한, 두 개씩 읽는 것이 좋다. 최대한 차분하고 정리된 마음에서 읽어야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잘 스며든다. 신경숙의 또 다른 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나누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유머에 대한 소질이 작가 스스로도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 정도의 가벼운 농담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것도 신경숙 작가의 재주다. 양념이 없는 지리탕 같은 이야기들의 묶음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달빛처럼 은은한 빛이 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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