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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미술작품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고흐2편)

by 썬도그 2007.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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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동생 테오의 권유와 도움으로  어두운 방안을 벗어나 파리로 향한다
 미술사에서는 막 인상주의화풍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인상주의 화풍이 인기를 얻게 되고
혹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술에 대한 강력한 적이 등장했다.

벨라스케스와 램브란트 다비드같은 실제 살아 숨 쉬는듯한 그림을 그리는 정밀묘사의 대가들의
그림이 그림의 정수라고 알던 시절에  바로 사진이란 것이 발명되었다.  사람들은  그림에 더 이상
흥미를 잃게 되었다. 어차피 사물을 똑같이 그리는게 그림이라면  사진으로 찍어 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유통되기 시작했구   화가들에게서도  이제 그림 그리는 직업은 사멸할 것이라고 자조하며
 사진을 질투하며 경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차피 시대의 흐름을 바꿀수는 없었고  사진은 점점
대중에게 다가왔다.

그때  새로운 화풍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하나의 풍경에서나 인물에서 받은 인상을
그대로 스케치도 한듯 안 한 듯하여 빠르게 그리기 시작한  인상주의 작가들이 나타난다.  마네, 모네를
필두로  파리에서는 인상파 화가들이 속속 등장한다.

화가들이나 사람들이 사진과 그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는 게 묘사력도 있지만  사진의 밝은 모습이었다.
그때까지 그림은 칙칙한 어두움이 많았고 주로 실내에서 작업을 하고 실내에서만 감상하다 보니
그 그림이 실제의 사물을 그대로 그린게 아닌 어둠에서 빛을 찍어 바른 식이  그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진은 흰 도화지 위에 사물을 검은붓으로 찍어낸 듯하였고  그 밝은 이미지에  화가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실내에서 찍기가 어렵기 때문에 햇빛이 가득한 거리에서 주로 찍었던 것이다.


모네는 캔버스를 실내의 공방에서 들고나가  야외로 나갔다.  들과 산으로 강가로 다니면서
여러 가지 풍경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바깥세상의 색의 홍수에 놀랍기도 하며 그 시시각각 매 시간마다 변하는
자연의 색을 담기 시작했다.     그 후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나왔고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이라는 콕콕콕
점으로 그리는  표현기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고흐는 파리에서 그런 인상파들의 그림에 놀라워하며 드디어 이 천재 화가는 색의 황홀함에 놀라워한다.
그는 이 시기에  일본판화인 우키요에들을 수집하고  직접 모작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이 어느 나라
보다 고흐를 사랑하는 것은 그 고흐가 바로 일본판화를 보고 배우며 모사까지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그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은 모두 친일파였다

고흐·고갱·마네는 모두 '친일파'였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고흐는 파리에서 고갱과 만나게 되고 친구사이로 지낸다.
두 천재의  비슷한 면이 많았다. 둘 다 안하무인이고  인상파 선배들을  우습게 여기며 자신들의 그림을
몰라주는 화상들에게 독설을 뿜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파리에서의 엉망이 된 삶을 뒤로하고

고흐의 먼저  햇볕이 강한 지중해 연안의 프로랑스의  작은 도시인 아를에 도착해 강한 지중해 연안의
풍광을 듬뿍 담아 그린다.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프로방스의 강력한 햇볕에 고흐는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면서 열정을 있는 대로 쏟아낸다.   그는 밀레가 이끄는
자연과 아름다운 노동 그리고 농부들의 삶을 그리는 바르비종파의 그림들을 모작하면서도 자신만의
색채로 그림을 그린다.

위의 그림인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의 그림과 비슷하면서도 자신만의 색채를 가진다 쇠라의 점묘법 같으면서도
색은 더 대담하다.  고흐의 해바라기에서도 나온  황금빛 강력한 노란 색채가 보인다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고흐는 친구인 고갱을 아를로 초대한다.  두 천재는 다시 아를에서 만난다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고갱의 자화상


[같지만 전혀 달랐던 두 거장의 이야기]
  포스트 보기

위의 포스트에서도 나오지만 둘은   카페 여주인의 그림과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를 그린 고갱의
작품에서  고갱이 고흐를 늙고 초라하고 맥 빠져 있게 그려 고흐의 분노를 사게 된다.  또한 카페 여주인을
귀부인처럼 묘사한  고흐의 그림과 달리  고갱은   있는 그대로 술집 작부로 묘사한다

고갱은  미친 듯이 그림을 판화처럼 하루에 한 작품 혹은 두 작품 이상도 그려대는  열정에 기가 질렸고
고흐를 질투했던 것이다.   마치 미치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림을 저렇게 빨리 그리는지 그러면서도
작품에 질 또한 대단했으니 고갱은 그를 질투하게 되었다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 고갱 작-

결국 사건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귀를 자르는 사건이  12월 23일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날에
발생한다.


고흐는 그 당시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자신을 질투하는 고갱과   자신의 그림이 팔리지 않는 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흐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 열정을 쏟게 했던   바로 간질병과 우울증이
고흐를 옥죄이고 있었다. 특히 간질에 대한 공포는  다시 발작을 하기 전에 하나라도 더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그의 열정이 한 팔레트 위에 버무려지는 물감처럼 뒤엉켜  그를 스스로 미치광이로
만들었고 고갱이 그를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고갱은 그런 고흐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슬슬 피하기 시작했고 사건을 직감했는지  며칠간 근처의 여관을 잡아서 지낸다. 하지만 고갱이  고흐의 집에 돌아왔을 때
경찰들이 고갱을 체포한다.  고흐가 귀를 자른 것이다.

유력한 용의자로 고갱이 체포되었지만 사실은   고흐 스스로가 귀를 자른 것이었다.  집안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사실은 귀를 자른 것은 아니고 귓불을 잘라   마지막 사랑인  창녀에게  선물을 하게 되었고

그 창녀는 까무러치고 만다.    고갱은 그 사건 이후로 고흐와 헤어지게 되고 고흐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고흐 죽음의 엑셀레이터를 밟다.(고흐 3편) 계속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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