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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칸트주의와 공리주의의 윤리적 딜레마를 진중하게 묻는 영화 프리즈너스

by 썬도그 201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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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신부에게 찾아와 고해성사를 합니다

"전 18명의 아이를 죽였습니다" 이 말에 신부는 지하실로 안내 합니다. 그리고 그를 의자에 묶고 굶겨 죽입니다. 

그럼 이 신부님은 악마일까요? 천사일까요?

가끔 뉴스에 연쇄 살인범이나 엽기적인 살인을 한 범죄자를 보면 우리는 이렇게 말 합니다 
"저런 쳐 죽일 놈"  이 말은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어떤 사람이 그 연쇄 살인범을 사건을 재현하기 위해 범행 현장에 도착 했을 때 칼로 찔러 죽였다면 우리는 그 용기 있는 사람을 용자라고 추켜 세워야 할까요? 아니면,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죽이면 쓰나? 라고 할까요?

이 질문의 대답은 각자 다를 것입니다. 정답은 없으니까요. 
영화 '프리지너스'는 이 질문을 관객에게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한적한 마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형적인 미국 지방의 한 마을입니다.  켈리 도버(휴 잭맨 분)는 10대 아들과 어린 딸과 아내와 함께 추수감사절을 이웃에 사는 흑인 친구 가족과 보냅니다. 두 가족은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그렇게 추수감사절을 보내는데 친구의 딸과 도버의 딸이 사라집니다. 처음에는 도버의 집에 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도 없습니다. 낮에 잠시 한 캠핑카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는 도버의 아들 말에 가족은 그 캠핑카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절망감과 두려움에 떨리는 손으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합니다. 그리고 그 용의 차량을 형사 로키(제이크 질렌할 분)이 수색을 하게 됩니다.


형사 로키는 용의자를 심문 하지만 아무런 자백을 받아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용의자의 지능 수준이 딱 10살이기 때문입니다. 10살의 지능을 가진 용의자가 몰던 캠핑카 안에서도 어떠한 범행 흔적이나 아이들의 흔적을 찾지 못합니다. 

의심은 가지만 아무런 용의점을 찾지 못한 경찰은 이 어리숙한 동네 바보형 같은 용의자를 풀어줍니다. 그러나 실종된 딸의 아버지인 도버는 이 바보 같은 용의자가 범인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그래서 풀어주지 말라고 부탁을 하죠. 하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용의점이 없기에 구속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48시간 후에 이 용의자는 풀려나게 됩니다


경찰과 함께 산을 수색하다가 이 용의자가 풀려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도버는 한 달음에 경찰서에 와서는 숙모와 함께 나오는 용의자의 멱살을 잡고 윽박 지릅니다. 놀란 용의자는 도버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실종된 딸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지막히 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다시 용의자를 찾아가서 물어보니 절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하죠. 이에 도버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경찰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용의자와 딸을 찾기 시작 합니다. 그렇게 이 도버가 철석 같이 믿는 동네 바보형 같은 용의자의 이상 행동을 잠복 감시하다가 보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딸이 징글벨을 개사해서 부르던 노래를 이 동네 바보형이 부르는 것에 확신을 하고 총을 겨눕니다



"내 딸 어딨어" "넌 알고 있지?"
그렇게 아빠의 분노는 자신의 직감만을 믿고 이 동네 바보형을 감금하고 폭행하면서 딸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합니다.



미국판 '살인의 추억'과 비슷한 상반된 캐릭터의 충돌

이 영화 프리즈너스를 보다 보면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성주의자인 서태윤 형사와 직감을 믿는 시골형사 박두만의 모습이 형사 로키와 실종된 딸의 아버지 도버와 상충 됩니다. 
모든지 감정을 배제하고 확실한 이유와 증거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와 딸의 실종이라는 감정의 폭풍 속에서 직접 직감만 가지고 증거도 없이 용의자를 감금 폭행 고문을 하면서 딸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영화 내내 담겨져 있습니다. 

형사 로키는 베테랑 형사입니다. 
지금까지 해결 못한 사건이 없을 정도여서 두 실종 가족들의 감정적인 모습을 다스리면서 차분하게 사건 수사를 합니다. 
어찌보면 이 형사 로키의 이런 모습은 관객들의 분통을 터트리게도 합니다. 자기 딸이 아니기에 저렇게 느슨하고 느리게 수사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죠. 하지만, 그게 실제적인 형사들의 수사 과정입니다.

실종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걸 차분하고 또는 사무적으로 쳐다보는 차가운 시선은 관객들의 화를 돋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차분하고 냉철한 로키 형사의 변화를 잘 담고 있습니다. 

영화 후미에 자신의 실수로 한 용의자가 경찰서에서 죽게 되자 냉철한 이 로키 형사는 감정에 휩싸이게 되고 그 와중에 강력한 사건의 연결고리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형사의 말을 동료 형사들은 믿어주질 않습니다. 

아버지 도버가 혼자 사건을 해결하려는 이유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형사들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형사 로키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형사들을 보면서 두 사람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형사 로키가 아버지 도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공리주의자 실종 가족과 칸트주의자 형사의 딜레마를 담은 '프리즈너스'

아버지 도버는 공리주의자입니다.  비록 과정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이지만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증거도 없는 용의자를 감금 폭행 고문을 합니다. 용의자의 비명 소리에 관객들은 아버지의 행동에 비난을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비난만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도 실종 가족의  상황이 되면 결과를 위해서 작은 희생은 괜찮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관객은 아버지의 행동을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를 합니다.  반면, 칸트주의자인 형사 로키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죠. 따라서 강력한 취조도 하지 못하고 용의점이 없다고 풀어 주게 됩니다. 칸트주의 윤리학에서는 과정도 중요시 합니다. 아들이 시험을 100점 받았 왔다고 자랑을 했는데 알고보니 컨닝을 해서 100점을 받았다는 말에 회초리를 든다면 당신은 칸트주의자이고 결과만 좋으면 됐지 다음에도 안 걸리게 컨닝하라고 하면 공리주의자입니다. 

경찰들의 사건 취조 과정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합니다. 결과만을 위한다면 손가락을 부러트려서라도 용의자에게 자백을 받아야겠지만 그랬다가는 세상의 지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형사 로키는 실종된 아이가 살고 있던 근방에 있는 성범죄자들을 하나씩 만나다가 성범죄 전과가 있는 신부를 만나게 됩니다. 신부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에게 찾아와서는 많은 아이들을 자신이 죽였다고 고해성사를 하기에 조용히 지하실로 내려 보내서 죽였다고 합니다. 이에 형사 로키는 불 같이 화를 내면서 그를 경찰서로 보냅니다. 여기서 큰 질문이 나옵니다.

연쇄 살인범을 죽인 신부는 과연 선한 사람일까요? 악한 사람일까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딜레마는 정답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판단은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법 체계에서는 결과가 좋고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살인범을 죽인 살인을 합당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시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한 평범한 가장이 악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과연 우리는 선한 사람들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서 범인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사람을 감금 폭행 고문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관객에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뫼비우스 같은 영화

프리즈너스는 수작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입소문을 살짝 들었지만 이 정도로 좋은 영화인지는 몰랐습니다. 많은 개봉관에서 개봉하지도 않았지만 개봉한지 1주일 만에 대부분의 영화관에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전 막차를 탔습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나 형사물이나 추리물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의 즐거움과 반전 같은 것은 있긴 하지만 '추적자'와 같이 추격씬도 거대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영화적 트릭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실제로 실종 사건을 풀어가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영화 러닝타임이 153분이나 되는 2시간이 넘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긴 시간에 큰 액션도 없고 긴박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철학적인 물음 때문입니다. 여기에 두 주연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도 큰 몫을 합니다.

대중성은 분명 떨어지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일부러 초반을 지루하게 묘사함으로써 이 영화가 그냥 단순 유괴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로 변질 되지 않고 실제 우리가 고민해야할 이야기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악마로 변해가는 그 과정을 급작스럽게 보여주지 않고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또는 고문을 하기 싫다고 울부짖으면서도 고문을 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거대한 화두를 잘 담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악마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모습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악마를 잡기 위해서 자신도 악마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관객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또한, 평소에 선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전부인 가족의 실종을 통해서 어떻게 악에 물들어가는지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를 무슨 추리물이나 형사물로 접근한다면 실망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리지너스는 아주 흥미롭게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형사 로키가 실종 가족과 비슷한 고통을 겪게 되면서 실종 가족을 좀 더 이해하는 모습 등은 이 영화의 큰 재미입니다.

프리즈너스는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도 계속 유발하게 하는데 대부분의 관객들이 영화 2시간 내내 실제 범인을 맞추지 못하는 영리함도 있는 영화입니다.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이 반전을 다루는 테크닉이 유려합니다. 



우리는 항상 선할 수 있을까?

영화는 2시간 동안 끌고 온 미로 같은 이야기를 후반 30분에 풀어냅니다. 초반은 좀 지루할 수 있을지 몰라도 후반은 가슴 떨리면서 보게 됩니다. 이 영화에 제가 푹 빠지게 된 이유는 이 영화가 실화를 기본 줄거리로 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액션, 현란한 스토리가 아닌 실제로 일어 났던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가면서도 과연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선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관객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도버의 행동이 과연 윤리적일까요?
아니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전 이 대답을 형사 로키가 아버지 도버에게 차 안에서 한 말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딸이 돌아 왔을 때 아버지로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해외에서도 호평이 높은 영화입니다. 대중성은 좀 떨어져도 이 영화가 묻는 질문이 묵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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