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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무덤이 되어버린 재개발 예정지역

by 썬도그 201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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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

이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흔들리지 않는 재태크 수단 1순위 부동산. 헌집을 주면 새집은 물론 추가이익금 1,2억 이상을 주는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부동산 광풍이 불던 80,90,2000년 대 까지는 이 말이 진리였습니다
헌집이나 판자촌을 밀고 그 자리에 성냥갑 같은 용적율을 늘린 고층 아파트를 세워서 건설비용은 물론 추가이익금 까지 나눠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황금 두꺼비가 돈을 낳는 시절, 부동산이 든든한 재태크이자 불로소득을 챙겨주던 시절, 강남의 졸부들이 속출하던 그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정말 이제는 아닙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더 이상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올리는 시대는 붕괴 되었고 오히려 추가 분담금을 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이 말하던 절벽으로 향하는 마지막 마차를 탄 사람들의 고통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오늘 아침 용산 역세권 개발이 디폴트로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보이네요. 이명박과 오세훈이 밀어부치던 뉴타운 광풍의 후폭풍이 지금 서울을 감싸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뉴타운 지정 해제 해달라고 아우성입니다.

2008년에는 여기도 뉴타운 지정해달라고 소리치던 사람드이 이제는 뉴타운 지정을 해제 해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 이상 재개발로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두껍이가 새집을 지어주긴 하는데 두껍이가 추가 분담금  1,2억을 더 달라고 하니 사람들이 이제는 해제 해달라고 합니다. 

북 아현동 재개발 예정지구도 뉴타운 지역입니다. 이곳에 다시 들려 봤습니다. 작년에 우연찮게 지나가다가 들렸는데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이화여대 근처에 있는 아현동. 지금은 위 사진 처럼 불도저로 밀고 아파트가 올라갈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서울의 재개발은 정형화 되어 있습니다. 헌집들인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을 밀고 그 자리에 용적율을 높힌 아파트를 올립니다. 이 용적율을 높여야 원주민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돈까지 끌어들여서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나마 아파트를 올리면 수익이 많이 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마져도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아파트도 20,30년이 지나면 노후되고 그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올려야 하는데 이미 용적율이 포화된 상태에서 더 이상 용적율을 롤릴 수 없으니 새 아파트를 지으면 추가분담금은 지금의 1.2억 수준이 아닌 3,4억 이상을 내야 할 것입니다.


1년전에는 가림막이 없었는데 이제는 거대한 성벽같은 가림막이 올라갔습니다. 그 안을 절대로 들여다 볼 수 없게 해 놓았네요. 재개발을 하고 있는 북아현동 1-2지역은 아파트가 올라서는데 뒷동네는 아직도 이전 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이 마을을 보니 여기저기에서 쓰레기가 넘쳤습니다. 여긴 뭐지?


아무도 말리는 사람도 없고 호기심에 이 마을에 들어가 봤습니다. 


사람소리가 사라진 이 곳은 북아현동 1-1 지역이고 주택에 대한 보상처리가 다 끝나고 재개발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살던 주민들은 보상금을 받고 다 떠났고 지금은 거대한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야 같이 생기가 도는데 사람이 업는 집은 빠르게 녹이 슬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보니 2012년 12월에 재개발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방치되고 있습니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해가 지고 있고 약간의 공포감과 무단 침입이라는 거부감도 살짝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다음에 날 좋을 때 낮에 와서 제대로 담아보고 싶습니다. 


추억이 허물어진다고 합니다. 이 골목과 골목은 다 추억이죠. 내 동네 추억의 8할은 골목과 계단이고 그 계단과 골목에서 이웃과 만나서 인사를 하고 놀이를 하고 친구네 집 담벼락에서 친구를 불러냈던 그 목소리들 마져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추억만을 안고 살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추억보다 한국인은 현세적이라서 불편함을 밀고 편의성이 좋은 아파트를 선호하고 그 때문에 재개발은 항상 다수결 싸움에서 개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이런 재개발에 대해서 추억이나 옛동네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그 안타까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아파트를 올릴려는 이유는 개발 이익과 함께 아파트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조선시대에서 초고속 근대화를 지나서 산업화 현대화가 된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현세적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투자 보다는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평온함과 위로를 받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를 믿습니다

이렇게 현세적이다 보니 옛것은 빠르게 제거하고 미국식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그걸 우리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인이 그렇습니다. 돈 안되거나 나에게 조금의 이익도 없고 그 이익이 저 멀리 있다면 그걸 선택하지 않고 당장 내 눈앞의 이익만 따르는 모습이 많습니다. 

그걸 크게 뭐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현세적인 모습 때문에 이렇게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나서 한숨 돌려서 뒤를 돌아보니 보존해야 할 것들은 다 사라졌고 자신들의 추억의 공간도 다 사라졌습니다. 서울 토박이 중에 자신이 태어난 동네가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된 곳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 또한 제가 어렸을 때 뛰어놀던 그 동네에는 지금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 모습을 한참을 쳐다 봤습니다. 


주택은 터저나온 내장 처럼 곳곳에 쓰레기를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세트장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세트장 혹은 영화 세트장이요. 


건축을 잘 모르지만 이런 건물들은 80년대나 9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로 보입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멀쩡한(?) 집들이 많았고 가끔 정말 무너지기 직전인 집은 10분의 1도 안 되었습니다. 왜 개발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냥 좀 보수를 하고 살수도 있을텐데 왜 다 밀어버릴까요? 정말 집이 불량해서 재개발을 하는 것이라면 제가 의문이 들지 않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멀쩡한 집들이 많았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사라졌습니다. 아파트는 정말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지만 마을은 다르거든요. 이런 주택가는 길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내기 쉽습니다. 아파트야 엘레베이터만 같이 공유하는 정도지만 주택은 골목을 공유하고 거리를 공유합니다. 또한 한 집에서 오래 살기에 동창과 친구들이 같이 삽니다.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다 허물고 아파트를 세웁니다. 편의성 때문에 연대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다 날려 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건물들은 황량함으로 포장한 채 낯선 이방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집에 들어가 봤습니다. 너무나 전망이 좋은 집이라서 들어가 봤습니다. 전망이 좋은지 쇼파까지 있네요


황금 조망이네요. 서울의 빼곡한 건물들이 가득 보입니다. 저 멀리 남산도 보이는데 이런 거대한 2개의 창이 시원스러움을 보여줍니다.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가 뒤를 보니 벽에 뭔가가 뿌려저 있습니다. 붉은색과 점성을 보니 피 같기도 하고요. 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옆에 있던 전화기에도 피 같은 것이 묻을 것을 보니 누군가가 여기서 싸움을 했는지 폭력을 가했나 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이렇게 둘러 보는데 아무도 없었고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슬럼지대를 방치하면 우범지대가 되고 불량스러운 학생들이 저녁마다 들릴 것 같은데요. 






재개발 지역을 내려오면서 멀리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두 떠난 것은 아니고 몇집은 아직 그대로 살고 계시나 봅니다





현금청산자 보상 공고문이 보입니다. 보상이 다 끝이 났고 이주비 까지 처리가 다 끝났나 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비조합원들의 소송에 대한 판결문도 있습니다. 이 재개발들은 조합원을 만들어서 50%의 찬성만 있으면 개발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수가 되지 못한 소수들은 다수에 의해서 무조건 이주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재개발 지역 마다 이런 소수자들의 소송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주민의 50%가 찬성하면 뉴타운 해제를 해주고 있습니다. 



노인정 앞에 있는 태극기도 관리가 안 되는지 때가 타고 찢어져 있습니다. 태극기가 이 마을의 모든 것을 보여주네요


멀리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떠나지 못한 분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곳입니다. 저 멀리 추계예대가 보입니다. 




절규에 가까운 현수막입니다. 예전에는 반대가 없었습니다. 재개발 하면 나오는 분양 딱지만 팔아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억분담금 내야 재입주가 가능하고 그 때문에 원주민들은 재정착을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밀려나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루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서민들이 많은 동네에 수억원이 어디있겠습니까 천상 집값 싼 곳이나 반지하나 경기도 지역으로 이주를 해야죠


무심한 마을버스만 이 마을을 끼고 지나갑니다. 


바로 옆에는 북아현 1-2구역에 지어지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입니다.




어둠이 내리는 북아현동을 뒤로 한 채 내려 왔습니다. 재개발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재개발을 하돼 꼭 아파트로만 재개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이며 지금같이 싹 밀고 평탄화 한 후 아파트 세우는 것 보다는 부분적으로 조금씩 리모델링 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책 '아파트 공화국'에서 보면 아파트가 단위면적당 용적율은 높을지 몰라도 사람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파트 보다는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같은 형태가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골목문화가 주는 따스함은 아파트가 전혀 생성할 수 없는 문화입니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따로 사는 듯한 아파트 보다는 전 주택가가 더 좋습니다.  뭐 어쨌거나 주민들의 꿈대로 재개발은 시작 되었고 부디 모두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추억을 분쇄한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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