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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아름다운 잔혹동화, 영화 스토커, 박찬욱 감독의 뛰어난 미쟝센에 취하다

by 썬도그 201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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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빠의 벨트, 삼촌이 준 구두, 엄마가 준 옷을 입고 한 소녀가 조준경이 달린 장총을 어딘가로 향합니다. 
탕~~~~~ 그 총성은 우렁찼고 그 핏빛은 꽃잎을 적십니다. 그리고 장탄식이 나옵니다

역시! 박찬욱이다. 

영화 스토커를 미국에서 연출 한다고 할 때 무슨 스토킹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발음 때문의 오해였습니다. 영화 스토커는 우리가 흔히 아는 스토킹(stalking)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닌 스토커(Stoker)집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이 영화속 삼촌이라는 인물은 어찌보면 스토커 같은 모습이기도 해서 오해를 해도 즐거운 오해가 될 것입니다. 


의문스러운 삼촌이 다가오다

영화가 시작하면 국도변에서 한 여자가 국도를 횡단한 후 옥수수 밭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나는 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뜻모를 이야기를 합니다. 

"꽃의 색을 꽃이 선택할 수 없듯 이건 내 책임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이후 신선하지는 않지만 박찬욱 감독 식으로 오프닝 시퀀스를 보여줍니다. 특히 스토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를 때는 아! 뭔가 대단한 영화가 나올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인디아(미아 바이코프스카
분)는 18번 째 생일날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장례식장에 갔는데 언덕 위에서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을 느낍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삼촌입니다. 


스토커 가문은 돈이 꽤 있는 집안입니다. 영화에서는 어느정도 규모인지는 보여주지 않지만 거대한 건물을 살 정도로 먹고 사는데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저택과 거대한 정원은 습기하나 없이 건조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 집안의 모녀 관계 때문입니다. 엄마 이블린(니콜 키드만 분)과 딸 인디아(미아 바이코프스카 분)은 불안해 보이는 관계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아빠 때문(?)입니다. 아빠와 딸은 먼곳 까지 가서 총으로 사냥을 하는 등 부녀관계는 돈독했지만 모녀 관계는 완전치 못합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1류 인생으로만 살아온 엄마는 성에 갖혀 사는 듯한 일상을 보냈고 그 일상에 지쳐합니다.

그런 일상이라는 새둥지에서 살던 이블린은 남편의 죽음으로 새둥지에서 나오게 됩니다. 너무 즐거워 했나요? 18살이 막 지난 인디아는 엄마의 그런 즐거운 모습을 매몰찬 표정으로 쳐다 봅니다.  이 불안한 모녀 관계에 의문스러운 삼촌이 등장합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을 한 삼촌이라는 인물에 인디아는 놀라워 합니다. 지금까지 삼촌이 있는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삼촌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딸 인디아는 삼촌을 거부합니다. 아니! 지금까지 살면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삼촌이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의문스러운 표정을 던지는 삼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면 엄마는 젊은시절 남편의 모습이 떠올라서 삼촌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죠. 

생전 처음 보는 삼촌은 이 저택에 며칠 간 더 머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인디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앞에 멋진 컨버터블 차를 몰고온 핸섬하고 댄디하고 럭셔리한 훈남 삼촌이 인디아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인디아는 그런 삼촌을 부담스러워 하고 피합니다.

삼촌은 다가갈려고 하지만 인디아는 피할려고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삼촌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고모할머니가 찾아오고 또 급하게 그날 떠납니다. 영화는 막장드라마로 가는듯 하다가 본격적인 스릴러로 흘러갑니다. 그렇다고 섬뜩하고 깜짝 놀라고 괴성을 지르면서 침을 질질 혹은 피를 뚝뚝 흘리는 미친놈이 날뛰는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광끼도 부드럽고 품격있게 미소도  천사의 미소인지 악마의 미소인지 알듯 모를 듯한 경게선에서 줄을 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 박찬욱표 미장센~~~

영화 스토리 이야기는 잠시 후에 다시 하고요. 그전에 이 영화의 미장센을 말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미장센의 대가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디테일의 신이라면  국내 최고의 미장센을 보여주는 감독은 박찬욱 감독입니다. 

그를 스타감독으로 만들어준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이나 유지태가 다리를 들어 올리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은 광고에서 페러디 될 정도였습니다. 이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도 최근 영화 '박쥐'에서도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설정과 연출 그리고 장면 미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스토커'는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몇몇 뛰어난 장면을 보여드리자면 
인디아가 삼촌의 컨버터블 카를 뿌리치고 스쿨버스로 하교 할 때 삼촌이 차를 몰고 뒤를 따라오른데 어느순간 도로 한 가운데서 인디아가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삼촌이 차를 몰고 따라가죠 그러다 갑자기 도로가 집으로 향하는 길로 바뀌는 마술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장면이 아주 수시로 나오는데요. 인물과 인물 인물과 사물을 대비와 대조 그리고 은유를 화면 가득가득 담으면서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시각적인 재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엄마의 방, 인디아의 방의 색깔과 그녀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과 장식과 분위기로 두 모녀 캐릭터를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가장 압권은 인디아가 엄마 이블린의 붉은 머리를 빗겨 줄 때 입니다. 
인디아가 큰 사건을 겪고 물이 다 마르지 않는 머리를 하고 엄마 방에 들어와서는 엄마에게 머리를 빗겨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모녀는 건조한 관계라서 엄마라는 사람이 딸의 머리를 빗겨줘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모녀 관계가 파괴되다 보니 엄마는 한 번도 해본적 없는 행동을 낯설어 합니다.

이에 인디아가 엄마의 붉은 머리르 빗겨주는데 그 머리카락은 시나브로 아빠와 사냥을 떠난 딸 인디아가 있는 갈대 숲으로 변합니다. 이 장면은 정말 멋진데요. 마치 하나의 그림 같다고 할까요? 그냥 엄마 머리카락에서 갈대 숲으로 바뀌는 것은 그냥 하나의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서 그 의미가 아주 중요한데 이걸 이렇게 멋지게 표현 했네요. 아주 대단한 미장센입니다.

그 장면 이후로 엄마는 딸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넌 누구야"


나는 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슬픈 성인식)

학교에서 1등만 하던 인디아는 엄마와 삼촌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삼촌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렇게 소녀는 성인이 됩니다. 이 영화는 인디아의 성인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축복해 주는 그런 성인식이 아닌 잔혹하고 선홍빛이 가득한 슬픈 성인식입니다

"나는 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삼촌 그리고 아빠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말이 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내속엔 내가 너무 많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속의 나는 내안의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침에 날 짜증나게 했던 행인이나 점심시간에 들린 음식점. 지금 옆자리에 있는 회사동료나 학교 친구 그리고 아빠 엄마 삼촌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학교 선생님과 SNS친구로 이루어졌습니다.

내 삶은 나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주변에 떨어진 다른 사람의 일상을 쌓아 올려서 내 일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소녀 인디아는 이 스토커 집안의 잔혹함과 몰상식과 비윤리적인 모습을 모두 흡수하면서 성인이 됩니다. 그리고 쿨하게 말 합니다.  꽃의 색을 꽃이 선택하지 않듯 내 삶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야! 적어도 내가 엄마 아빠 삼촌을 선택하지 않았듯 나는 그저 보고 배우는 것이야


저는 이 말을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 주변의 청소년들을 우리는 손가락을 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말세라고 외치죠
그런데요. 그런 10,20대들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누가 그렇게 못나고 추하고 못되게 성장하게 했을까요?  바로 당신들 기성세대가 만든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그냥 백지일 뿐입니다. 거기에 무슨 그림을 그리든 그림 자체는 10대의 선택이자 몫이지만 그림을 그릴 도구를 주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입니다. 그런데 백지만 주고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아무런 그림도구가 없는 아이들은 뭘로 그림을 그릴까요? 그래도 그리라고 다그치고 몽둥이를 들면 어떻게 그림을 그릴까요?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손을 깨물어서 피로 그리면 되니까요? 그렇게 피로 그린 그림을 내밀면 이 XX가 반항한다면서 몽둥이로 팹니다. 어차피 그리나 안 그리나 맞고 자라는게 우리들 10대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일탈행위를 많이하고 폭력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바로 우리 사회가 썪어문들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그런 아이들의 찌든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고 창피하면서도 책임감도 느낍니다. 지금의 엄마 아빠들이 아주 못나서 그런 것이라고 자학도 합니다.  어른을 보고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  인디아가 딱 그 모습입니다. 엄마에게서 욕정을 배우고 삼촌에게서 폭력을 배웠습니다. 


가끔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더 나쁜 짓을 하지 않기 위함이야. 


평범한 소녀, 조그마한 변화도 거부하고 두려워 했던 소녀는 나쁜 짓을 목도하고 직접 하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갑니다. 어른에게서 배운 행동 그대로 삼촌이 사준 하이힐을 신고 엄마가 사준 옷을 입고 아빠의 벨트를 차고 답답한 성과 같은 저택에 나와서 삼촌이 몰고온 컨버터블 카로 질주 합니다.  유혹하기 적당한 속도로 질주하는 인디아.

그 모습에 손가락질을 하지 못하고 어느정도 공감하는 내 모습은 내 안의 어둠이 인디아의 미소와 연결되어서겠죠?

이 영화 스토커는 두 배우가 주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니콜 키드만은 생각보다 많은 분량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로 조카와 삼촌만 나옵니다. 특히 인디아를 연기한 
미아 바이코프스카의 뛰어난 연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배우 누군가 했더니 2년 전에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온 그 배우네요. 그때는 금발이었는데 이번엔 검은 머리로 나와서 누군지 몰랐네요. 

소녀에서 성인이 되는 그 미열이 가득하고 혼란의 계절을 뛰어난 연기로 잘 소화해냅니다. 항상 미간을 찡그린 듯한 표정으로 지내는 10대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미스테리하고 느끼한 그러나 묘한 마력을 가진 삼촌 찰리를 연기한 '매튜 구드'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정말 이 두 배우의 열연과 감독 박찬욱의 뛰어난 미장센과 편집술, 여기에 시종일관 계속 궁금증을 유발하면서도 한방을 위해서 서서히 조여가는 사냥감을 쫒는 포수의 연출력은 후반에 강한 파열음을 내면서 터져 나갑니다. 

꼭 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워낙 박찬욱 감독 스타일이 대중적이지 못하고 매니아적인 성향이 있으니까요. 그러에도 이번 영화는 상당히 대중적입니다. 그냥 스릴러로 봐도 꽤 볼만한 내용이고 재미도 있습니다. 물론, 저야 팬이기에 아주 재미있게 봤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팬이 아닌 분들에게는 그냥 평이한 스릴러 영화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박찬욱표 영화 치고는 꽤 대중성이 높다는 것이 흥행에도 어느정도 고무적입니다. 이미 38개국에 수출한 영화 스토커. 개봉한지 1주일만에 사라진 '라스트 스탠드의 흥행 실패를 덮기 위해서라도 허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감독의 영화가 흥행에 좋은 성적이 나왔으면 합니다. 

각질 하나 없는 연출력과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공감하게 만든 두 배우의 열연, 그리고 아름다운 주제가도 볼만 합니다.
대박은 나지 않겠지만 허리우드에서도 그의 진가를 보여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해외에서도 극찬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제2의 히치콕 감독이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하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제2의 히치콕이 아닌 박찬욱은 박찬욱이고 제1의 박찬욱이라고 보고 싶네요.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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