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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눈이 소복히 쌓인 창덕궁의 겨울

by 썬도그 201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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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는 고궁들이 무료개방을 합니다. 종묘를 지나 창경궁 그리고 창덕궁으로 넘어 갔습니다. 종묘에서 창경궁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를 막고 대신에 창경궁과 창덕궁 연결문을 개방 했습니다. 

따라서, 창경궁을 다 관람 하신 후에 창덕궁으로 넘어가셔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4대 고궁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종묘를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통합 관람권이 1만 원 입니다. 창경궁, 창덕궁,종묘는 한 나절에 다 둘러 볼 수 있지만 경복궁과 덕수궁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버스나 택시로 이동해야 합니다. 통합관람권은 1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2분활 해서 재방문해서 볼 수 있습니다.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었습니다. 1405년 태종 5년 때 지은 궁궐로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궐이라고 했고 경희궁과 경운궁(현 덕수궁)을 서궐이라고 했습니다. 창덕궁은 일반관람 지역과 절경과 비경이 아름다운 후원은 가이드 관람을 해야 합니다. 

위 이미지의 육각정은 삼삼와입니다. 오른쪽은 승화루이고요. 둘은 복도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 했습니다. 저런 멋진 도서관이 있었나요? 그나저나 조선시대는 너무 책만 판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너무 이론 공부만 많이 하고 상업과 기술은 천시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위 이미지 사진은 낙선재입니다. 낙선재는 1847년 헌종 13년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그러나 일본으로 시집갔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윤황후가 1966년 까지 살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후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1963년 부터 1989년까지 살던 곳이기도 합니다. 실제 저 건물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의 몰락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상당히 현세적인 민족이라서 과거에 집착하지도 미래에 연연하지도 않습니다. 현재를 가장 중요시 하기 때문에 현재의 만족을 위해서 바로 태도를 바꾸길 잘 합니다. 이 모습은 상당히 실용적인 모습으로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이렇게 급속하게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복을 벗고 갓을 머리에서 치우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함부로 할 수 없다면서 남자들도 치렁치렁 머리를 기르던 유교 문화가 근본주의적으로 뿌리가 박혀서 극단적인 유교를 신봉했던 나라가 단 몇십년 아니 몇년만에 머리를 깎고(비록 일본에 의한 강압이지만) 양복을 입고 하는 모습하며 빠르게 옛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하는 모습은 다분히 현세적입니다.

믿음이나 생각을 현재에 맞춰서 살기 때문에 한국은 종교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죠. 신념이 깊지 않고 기독교 믿다가 내년엔 불교 믿는 분들도 많고 그때 그때 빠르게 태도와 입장을 바꾸는 모습은 기회주의라는 비판이 있을 지 몰라도 그런 빠른 변화의 적응력과 융통성은 한민족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딴 이야기지만 요즘 북한 보면 피는 못 속인다고 뭘 했다하면 끝까지 가는 모습입니다. 공산주의도 세계 최고의 근본주의적인 공산주의를 하고 핵도 개발하고 있죠. 한국을 보면 자살율 1위에 교육열 1위 아무튼. 한민족은 뭔가 했다하면 끝까지 가는 것이 많네요. 

좀 딴 이야를 했네요. 
왕 좋아하는 한국이지만 폐위된 왕 취급하 듯 조선의 왕족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왕족이 누가 남았는지도 관심도 없었고 가끔 쓰러져간 왕족을 가십거리로만 담았습니다. 덕혜옹주가 낙선재에 살았는지도 죽었는지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다 지나고 난 후 돌아보는 모습은 개발이 우선이라면서 먹고사니즘을 앞세워서 종로에 있던 많은 옛 건물들을 고민도 없이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거기에 높은 빌딩을 올린 후에 뒤늦게 아차차~~ 하고 후회를 하고 건물의 묘지를 곳곳에 박아 놓아서 건물의 비석이 가득한 종로로 만들었습니다. 


단청이 없는 건물이 바로 낙선재입니다. 단청이 없는 건물들은 주로 사람이 기거하거나 공부하거나 일상 생활을 하는 곳이고 단청이 화려한 곳은 접대를 하거나 잔치를 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 사용했습니다. 단청이 있고 없고로 한옥의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단청이 없으면 수묵화 같고 있으면 컬러 사진 같습니다. 

있어도 없어도 멋진 한옥입니다.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이지만 수백년이 지나도 사용할 수 있는 건물입니다. 지난 달에 강남 선수촌 아파트와 몇몇 강남 아파트를 보니 흉물스럽게 녹이 슬고 있더군요. 88년 올림픽 때문에 만들어진 아파트라서 35년이 지났는데 겨우 30년이라는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엔 아버지가 물러준 집에서 아들이 살았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물려준 집으로는 아들이 살 수 없고 부동산 경기가 계속 추락하면 아버지가 살던 집을 팔아서 더 적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자식들이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건물 수명이 인간의 평균 수명 보다 짧다보니 평생에 이사를 최소한 2,3번은 해야 한다는 이야기고 2,3번을 할 때 마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돈을 더 내던가 아니면 더 적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또 딴소리를 했네요.








낙선재는 석복헌과 수강재 건물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러 채의 집을 합쳐서 통상적으로 낙선재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가보면 여러집이 작은 문을 통해서 넘어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만들었을까요? 눈사람이 우뚝 서 있네요. 눈 오는 날 관광객이 만들어 놓은 것 같네요. 특히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은 눈을 너무 좋아 하더라고요. 몇년 전에 덕수궁을 갔더니 동남아시아 관광객 분들이 덕수궁에서 눈사람을 만들던데요. 


보물 815호의 희정당입니다. 임금의 침실에 딸린 편전이고 입구에는 고종이 타고 다니던 차량이 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푸른 기와지붕의 건물로 외국에서 수입한 유약을 발라서 기와가 파랗습니다. 아주 비싼 유약이라서 몇몇 건물에서만 청기와를 사용 했습니다. 청와대도 기와가 파랗죠. 그래서 청와라고 부릅니다. 


기와에 눈이 소복히 내렸고 한 가족이 그 앞에서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창덕궁의 큰 행사장인 인정전입니다. 창경궁은 1층 짜리 건물인데 이 창덕궁은 2층짜리 건물입니다. 
2층은 무슨 용도 였을까요? 

창덕궁 후원의 어떤 느낌일까요? 
또 큰 눈이 내린 후에 한 번 카메라 들고 겨울을 촬영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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