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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분조차 부끄러워졌던 영화 '나비와 바다'

by 썬도그 201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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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사회에 당첨 되었지만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보통 영화 시사회 당첨되면 살짝 미소 지어져야 하는데 당첨 메세지 받고도 봐야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맥스무비 시사회 앱에서 모든 시사회를 다 신청했는데 신청한 지도 몰랐던 '나비와 바다'라는 영화가 당첨되었습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시내에서 약속이 있고 해서 겸사겸사 찾아가 봤습니다. 제가 보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영화 소재가 장애인의 삶을 다룬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 싫어서 보고 싫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삶도 고달파 죽겠는데 또 힘든 삶을 스크린에서 볼 자신도 용기도 없고 혹시나 영화를 보고 나서 더 기분이 우울해질까봐에 대한 걱정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나비와 바다'를 보고 제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우리와 그들이라고 무리짓기를 했던 제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재년씨와 우영씨의 결혼식을 보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 생활이 되길 바라면서 영화관 문을 나섰습니다. 

세상에 분명 존재하지만 머릿속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동성애자와 같은 성 소수자와 수많은 소수자, 그들은 다수가 만들어가 가는 세상의 한쪽 구석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는지를 우리는 잘 모르고 삽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장애인인 자식을 두면 동네 창피하다면서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의지만 있다면 외출도 가능합니다. 세상에 있지만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장애인들이 이제는 세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는 장애인들을 비장애인들은 도와는 줘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몰라서 어쩔줄 몰라 합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혼자 건널목을 건너면 비장애인들은 도와준답시고 팔을 끌고 갑니다. 이러면 안되고 다가가서 제 팔을 잡으세요라고 말한 뒤 비장애인의 팔에 시각장애인이 팔을 올리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교육도 직접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하다 보니 장애인을 어떻게 도울지 잘 모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에 철책을 쳤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과 함께 사는 삶 보다는 장애인을 따로 모아놓고 관리하는 형태로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우영과 재년의 결혼 극복기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우영과 재년씨는 띠동갑 거플입니다. 우영씨는 말은 비장애인 못지않게 잘하지만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설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어머니가 도와줘야 합니다. 물론,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밥 챙겨 먹는데도 3배나 더 긴 시간이 걸립니다. 


재년씨는 몸이 뒤틀리긴 했지만 걸을 수도 있고 행동이 좀 정확하지 않지만 음식도 하는 등 행동은 우영씨보다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이 두 사람은 8년째 사귄 커플입니다. 
영화 '나비와 바다'는 이 두 커플의 결혼 극복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제가 결혼 극복기라고 한 이유는 이 커플의 결혼까지 가는 길이 길고도 멀어 보였습니다. 그 과정을 다큐는 가감 없이 담고 있습니다


영화 속 화자는 우영씨입니다. 말을 잘 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잘 말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마흔이 가까워 오는데 결혼도 못한 처지를 가끔 한탄합니다. 더구나 폐암으로 아버지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인지 재년씨가 한사코 만류합니다.


사랑의 시작은 재년씨가 먼저 했습니다. 먼저 우영씨가 좋다고 말했고 이런 재년씨를 우영씨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니 재년씨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단지 두 사람이 좋아서만 하는 것이 아닌 가족과 가족이 만나고 다른 사람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냉혹한 현실이란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자꾸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재년씨.  그럴 때 마다 오빠가 다 해줄게 오빠 믿어봐. 제발 오빠 믿어봐!! 라고 말하는 우영씨
그러나 우영씨는 재년씨를 위해서라도 급하게 결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장애인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혼자 옷갈아 입고 목욕하는 모습과 밥 먹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일상을 기록하듯 장애인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런 장면에서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만 저는 딱히 연민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더군요.

단지, 상상은 할 수 있었지만 목도하지 못한 그 부분을 본 느낌이라고 할까요? 우영씨는 자기가 이렇게 태어난 것을 어쩌라면서 항변도 하지만 큰 소리로 소리치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런 굴레에 익숙해진 듯 체념한 듯 말합니다. 그럼에도 비장애인들 처럼 결혼의 꿈을 키웁니다. 

양가 부모님들의 이야기도 들립니다. 자기 아들이 장애인이니까 장애가 심하지 않은 며느리를 만났으면 하는 부모님의 마음도 담겨져서 보입니다만 우영씨의 타박에 수긍을 합니다. 이렇게 다큐 '나비와 바다'는 장애인의 삶을 곁가지로 담으면서 두 연인의 결혼 극복기를 담담하게 담고 있습니다. 


무려 8년간의 긴 연애생활 끝에 두 분은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참 쉽지 않습니다. 재년씨가 자신없어 하고 주저하는 모습에 우영씨가 속이 탑니다만 그렇다고 윽박 지르지는 않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면사포까지 쓰고 결혼 앨범 촬영까지 해 놓고도 재년씨가 결혼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은 어쩌면 장애인의 결혼기라기 보다는 평범한 우리 주변의 비장애인의 결혼 스토리 같기도 합니다. 비장애인이 느끼는 고통과 삶의 굴곡이나 결혼마저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다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나비와 바다'의 미덕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와 그들은 장애가 없고 있고의 차이일 뿐, 삶은 똑같다는 동질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다큐는 재미있거나 크게 감동스럽거나 그런 다큐가 아닙니다. 또한 얄팍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다큐도 아닙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고 장애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몸이 좀 불편할 뿐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단어도 앞으로 쓰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냥 우리들이죠


나비와 바다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을 무한 복사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없기에 이 다큐가 나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재년씨가 우영씨의 프로포즈를 받아 들일 때 웃던 그 백지같은 순수한 미소가 순간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세상에 저런 아름다운 미소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미소 영원히 간진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이 나비와 바다일까요? 영어 제목은 Sea and Butterfly가 아닌 Sea of Butterfly라고 한 이유는 뭘까요?
제 생각으로는 나비 처럼 훨훨 날고 싶은 장애인 부부의 꿈을 나비와 바다에 투영하는 것은 아닐까 하네요. 재년씨가 바닷가에서 튜브를 타고 놀때만은 비장애인 처럼 자유로워 보였으니까요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영화입니다. 장애인을 비장애인들의 감동의 도구로 묘사하지 않아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이 다큐는 진짜 장애인의 삶을 담은 다큐라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우리에게 감동의 소재라는 소비재로 사용되어지는 가짜 장애인의 영화들에 대한 카운터 펀치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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