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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80년대를 통째로 추억하게 만든 '살인의 추억'

by 썬도그 201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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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는 5년이나 10년 주기로 다시 봐야 하나 봅니다. 몇번을 다시 본 '살인의 추억'이지만 오늘 EBS에서 해준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2003년 개봉 당시 봤을 때는 느끼지 못한 것들이 오늘은 봄에 새싹처럼 피어납니다.


무대뽀 박 형사와 논리적인 서형사가 그리는 버디 무비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팩션형식을 갖춘 영화입니다. 80년대 희대의 연쇄 부녀자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영화의 소재는 연쇄 살인 사건이지만 좀 떨어져서 보면 전형적인 버니 무비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먼저 시골 출신의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한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는 과학적 수사는 개나 줘버리고 무조건 용의자라고 느낌이 오면 잡아다가 족쳐서 강제로 사건 진술을 억지로 받아냅니다. 박형사가 지목한 용의자들은  구타속에서 범인으로 만들어지죠. 

그렇게 백광호(박노식 분)을 잡아다가 향숙이를 죽였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언론 앞에서 사진도 찍습니다. 다 끝난것이죠. 
그러나 억지로 받아낸 가짜 자백은 들통이 나고 맙니다. 무대뽀 수사의 치졸함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이 무대뽀 수사를 메우기 위해서 서울에서 4년제 대학 출신의 서태윤(김상경 분) 형사가 내려옵니다.

서태윤 형사는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으로 박형사 같이 무식하고 불확실한 직감 보다는 서류와 이성적 판단등 사건을 논리적으로 추적합니다. 이 두 형사는 180도로 다릅니다. 시골 출신의 박형사는 인맥을 통한 직감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수사를 하는 반면 서형사는 논리와 과학적 수사를 추구하죠. 이렇게 두 형사는 스타일 자체가 아주 다릅니다. 

그러다 한판 붙게되죠. 

둘의 신경전은 싱겁게 끝나고 맙니다. 신임 반장이 서형사의 논리적 접근법을 선택하고 비논리적이고 심지어 미신과도 같은 근거 없는 육감과 직감을 이용해서 수사를 하는 구태스러운 박형사는 밀려나게 됩니다.

이 두 캐릭터의 모습은 이렇게도 비추어집니다. 박형사가 상징하는 80년대 이전의 미신을 맹신하는 비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와 서형사로 대변되는 신문명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시대의 충돌이라고 할까요?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20세기 초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찍은 조선의 모습을 보면 시골에서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고 미신과 같은 풍습으로 악귀를 쫒아내거나 병을 치료하거나 하는 모습은 눈쌀이 찌푸려지기까지 합니다.

인과관계나 상관관계에 대한 진중한 관찰 보다는 ~~카더라식의 검증안된 이야기들이 점령을 하던 모습이었고 이런 미신과 같은 모습은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서서히 계몽되어 사라집니다. 

박형사는 그런 미신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형사고, 서형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형사로 비추어집니다.
이렇게 미신과 과학의 충돌속에서 과학이 승리하면서 박형사는 서서히 자신의 미신적인 행동을 반성하고 서서히 서형사일을 돕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이성적인 서형사가 몇번의 폭주 끝에 이성보다는 감정의 노예가 되어 용의자를 윽박 지릅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비를 맞으면서 기차 터널 앞에서 서형사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박현규(박해일 분)가 
자백을 하지 않자 분노에 찬 서형사가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성적인 판단으로 총구를 박현규에게 겨눕니다. 이때 미신과 폭력의 상징이었던 박형사가 그 총구를 내립니다. 두 캐릭터가 서로 동화되다가 역전이 되는 모습이죠

미국에서 도착한 DNA 검사 결과를 받아든 서형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립니다. 자신이 맹신하는 과학이 박현규가 범인이 아니라고 지목하는 모습에 과학이라는 절대 믿음 마져 버리고 박현규가 사라져가는 기차 터널에 총을 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두 형사의 캐릭터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불꽃이 튀며 서로 협업하는 과정에서 극의 몰입도를 유발합니다. 또한 이 두 형사가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지켜보는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박형사는 서형사처럼 주먹과 직감을 내려놓고 이성적 판단을 하는 형사가 되어가고 반대로 서형사는 이성과 논리와 과학을 신봉하던 모습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잘 풀리지 않자 감정을 앞세우고 총구를 용의자에게 겨눕니다. 




80년대를 디테일하게 담은 영화 '살인의 추억'


서형사와 박형사의  대립과 갈등이 이 영화이 씨줄이라면 날줄은 80년대입니다.
최근들어 30,40대 관객층을 잡기 위해서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80년대를 아주 잘 담은 영화가 바로 이 살인의 추억입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든 감독 봉준호는 이 영화에서도 아주 디테일한 80년대를 잘 담고 있습니다. 뭐 논과 시골만 나오는데 뭘 잘담았고 하겠지만 그런 눈에 보이는 80년대 말고 80년대식의 사고 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상념에 잠긴 것은 영화 내용 보다는 과연 80년대는 어떤 시대였나 하는 것입니다.
80년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학생들의 시위와 군사독재정권 그리고 10대들에게는 교복 자율화가 있을 것입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어서 자정부터 새벽4시까지 전국민이 밤에 불을끄고 무조건 자야 했습니다.

지금의 20대 들에게는 상상도 가지 않는 모습이지만 그 80년대는 그랬습니다. 82년 야간통행금지가 풀렸지만 풀리면 뭐합니까 밤에 여는 술집도 영업하는 상가도 없었습니다. 20대들은 그런 시절의 무식스러움을 손가락질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지금의 20대들이 더 불행한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새벽에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전국의 20대들은 24시간 숨가쁘게 돌아가는 한국호에서 멀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풍요롭지 못한 80년대. 선진국을 향해 달리는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많은 부분이 제약을 당했지만 경제적인 고도성장기여서 가장 한명이 버는 돈으로 아내와 자녀들이 먹고사는데 넉넉하지는 않지만 큰 고통은 없었습니다.

노력만 하면 먹고 사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던 80년대. 군부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대학생들이 있었지만 서민들의 삶에서는 군부독재건 뭐건 먹고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고 치안도 아주 좋았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이 80년대를 그리워하는 어른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물론 전두환, 노태우로 대변되는 시대는 암울했지만 서민들의 먹고사니즘은 해결된 시대였죠.

한국은 서서히 수출로 벌어온 외화로 큰 고도성장을 했고 중진국을 넘어서 선진국으로 달음칠 시던 시대였습니다. 
여전히 미신적인 요소가 가득했던 시절이였고 어른들이 까라면 까라는대로 시대였고 지금보다 더 강력한 병영국가의 모습을 취했던 시절입니다. 

한국이 80년대 까지의 보호무역의 인큐베이터를 버리고 개방적인 모습을 취한 것은 90년대 김영삼 정권에 접어들면서 세계화를 외친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가 터지면서 해외, 특히 미국의 문화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의 80년대는 우리의 전통가치와 서양의 새로운 가치들이 서로 충돌을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전통가치를 수호하는 듯한 박형사의 전형적인 80년대의 구시대적인 인물 박형사와 90년대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서형사의 두 폭주기관차는 영화에서 수시로 충돌합니다.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 해결과정에서 80년대의 우리의 모습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결국 사건은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끝이나고 실제 사건도 미해결 사건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큰 홍역을 겪으면서 한국은 한뼘 더 자라게 됩니다. 지금이야 현장의 조그마한 DNA조각만 있어도 바로 용의자를 색출해서 검거할 수 있는 과학수사가 보편화 되어지만 80년대는 오로지 직감과 정황과 용의자의 자백으로 수사를 했던 시절입니다. 

다양한 사고보다는 상관의 사고가 내 사고방식이 되고 진리가 되는 그 80년대의 병영국가의 모습에서 새로운 가치를 주입하는 과정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뭐 지금도 구태스럽고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수사를 하는 형사들과 경찰과 검찰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미신과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죠. 


살인의 추억은 어쩌면 봉건적인 한국과 봉건을 벗어나는 그 중간에 있었던 지난 8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봉건적인 사회였던 그 시절은 지금 보다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고 선생님의 회초리는 사랑의 매였습니다. 또한 어른의 가치에 항거하면 모두 불순분자였죠. 대발이 아빠가 있었던 80년대. 그러나 90년대 세계화를 통해서 서양의 가치관이 이식되면서 많은 거부반응과 말세라고 외치는 어른속에서 한국은 아주 빠르게 서구화 되어갑니다.

지금은 아버지와 선생님의 권위는 많이 사라졌고 아버지 혼자 벌어서는 자식을 키우기 힘든 시대가 되었고 아버지 혼자 가족을 감당하지 못하다 보니 아버지의 절대적인 모습도 느슨해졌습니다. 새로운 가치가 더 많이 이식되고 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옛 사고방식과 서양의 사대주의라고 지적 받을 수 있는 서양식 사고방식이 곳곳에서 대립하고 있습니다.

80년에서  한국은 30년 넘게 항해 했지만 여전히 병영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네요. 아마도 본전생각에 악습이 계속 이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무비판적으로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함께 합니다. 주체성 보다는 해외반응과 외부의 시선을 더 많이 중요하는 모습은 올바른 모습 같아 보이지는 않네요. 사고방식은 여전히 봉건적인데 입고 다니는 옷만 서양의 것이 된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 이야기 하다가 딴소리만 잔뜩 한것 같지만 저는 서형사와 박형사를 보면서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충돌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80년대가 그리울까요? 저는 그립지 않습니다. 80년대는 권위의 시대이자 이념과잉의 시대이자 엄숙주의가 가득했던 시대입니다. 별거 아닌 권위를  꽉 움켜준 소수가 세상을 이리저리 재단하던 시대였으니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90년대도 다시 돌아보는 글을 써보고 싶네요. 영원히 잡지 못한 연쇄살인범처럼 우리는 그렇게 숙제를 다 끝내지 못하고 90년대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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