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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잔인한 주주 자본주의의 지독함을 담은 영화 '더 문'

by 썬도그 201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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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지 2년이 지난 영화입니다. 그러나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어제 그 보고 싶었던 영화 '더 문'을 스마트폰으로 봤습니다.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이니 보실 분은 뒤로 버튼을 눌러 주세요

영화의 배경은 근 미래에 퓨전에너지를 달에서 발견한 시점입니다. 달에 태양풍으로 쌓인 헬륨3라는 청정에너지를 인류가 발견하고 그 헬륨3를 채광하러  '루나산업'은 달기지를 세웁니다.

루나산업은 달기지를 세우면서 전 시스템을 자동화 시켰고 관리자 명목으로 우주인을 한 명 배치합니다. 혼자 외롭게 3년간 근무를 하면 지구로 돌아 올 수 있는데 주인공 '샘 벨'은 2주 후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샘 벨에게 자꾸 헛것이 보이고 멍 떄리기를 가끔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마다 로봇 거티가 훌륭한 친구가 되어주죠. 그러다 사고가 납니다. 하베스트 채광기계와 샘 벨이 타고 나간 달 트럭이 부딪히는 사고가 납니다. 

그리고 샘 벨은 기지에서 다시 깨어납니다.  
깨어난 샘 벨은  거티와 회사 '루나 산업'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거티가 기지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는 회사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간곡한 '샘 벨'의 부탁에 기지문을 열어줍니다. 그렇게 기지 밖으로 나간 샘 벨은 사고가난 하베스트와 트럭의 충돌사고 현장에서 트럭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구해옵니다.

그 구해온 사람은 놀랍게도 자기와 너무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고 둘은 어리둥절해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클론이라고 악담을 합니다. 이 영화는 영화를 보다 보면 이 궁금함이 영화 중반까지 끌어갑니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 달리 숨기거나 비비 꼬지는 않습니다. 

서로 클론이라고 주장하는데도 큰 동요가 없습니다. 설마~~ 그냥 쿨하게 넘기죠. 


그렇게 둘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로봇 거티에게 누가 클론이냐고 물어봐도 배고프지 않느냐며 딴 소리만 합니다. 
이 두명의 샘 벨은 생긴 것만 똑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기억까지 똑같습니다. 사고가 난 샘 벨과 그 샘 벨을 구한 또 다는 샘 밸의 기억도 똑같습니다.


아무리 생긴게 똑같이 생겼다고 해도 기억까지 똑같지는 않겠죠. 쌍둥이라고 해도 각자 살아온 삶은 다르니까요. 그러나 둘은 같은 아내 같은 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3년간 저 가족을 보기 위해 견뎌왔는데 내 기억이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는데 그 혼란스러움과 궁금증을 다 풀어주는게 바로 로봇 거티입니다. 이 로봇 거티는 명령을 따르는 로봇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수시로 보여줍니다. 샘 벨이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 할때  접근해서는 안되는 달기지의 이전 기록을 봉인해제해주는 암호를 직접 입력해주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샘 벨 모두가 클론이라고 말해주기도 하죠. 

두 샘 벨은 누가 진짜가 아닌 수 많은 샘 벨이라는 클론 중 한 명일 뿐이고 수명이 3년이라서 3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면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전의 샘 벨들은 지구로 돌아간다고 착각하며 관과 같은 곳에 몸을 누이면 마치가스에 의해서 지하창고에 차곡차곡 보관되는 것입니다.

더 문은 이런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조작에 대한 이야기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신의 기억이 다른 원본의 것을 복사한 기억이고 자신이 클론이라는 사실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정체성을 다룬 영화이지요

그런데 그 어떤 영화보다 전 무너져가는 '샘 벨'의 모습이 너무나 마음 아프더군요.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3년동안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를 꿈꾸는 사람이 자신은 하나의 소모품이라자 기억 모두가 이식된 기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할까요? 비록 3년이라는 짧은 수명을 가진 복제품이자 소모품이지만 그 3년은 인간처럼 살고 그렇게 알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같은 클론이지만 3년이 지난 클론과 새로 깨어난 클론(3년마다 한 명의 클론이 깨어나서 임무교대를 합니다)의 성격이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새로 깨어난 클론은 인지력이 무척 뛰어나서 얼핏 본 이상한 느낌과 사실을 끝까지 파해칠려고 하죠.  같은 DNA와 같은 기억을 가진 두 클론은 성격은 크게 다릅니다. 

성격이 다른 것은 영화에서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주주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느끼게 합니다. 
경제 민주주의다 자본가들을 독설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그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러면 안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장 거대한 수익을 내야 한다고 윽박지릅니다.  분명 그길로 가면 사회는 물론 회사도 공멸하는 것이 자명하지만 당장의 이익만이 중요한 주주 자본주의는 도덕성은 가볍게 무시합니다. 무너지기 전에 큰 수익내고 튀면 되니까요.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일도 서슴치 않게 하는 이 주주자본주의는 마치 공개처형을 할 때 수 명의 군인들을 나열해 놓고 어느 총알이 사형수를 죽였는지 알 수 없게 즉 책임을 N분의 1로 나누게 하기 위한 것과 같습니다.

만약 사형수라고 해도 단 1명의 군인이 사살하게 한다면 쉽게 사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을 분산시키면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추악한 짓거리도 할 수 있죠.  루나 산업은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서 인간을 보내는 고비용보다는 한 사람을 기억까지 모조로 복제한 후 그걸 클론에 심어 놓고 3년마다 한 명씩 깨워서 인간인것처럼 살게 하면서 아내와 자식이라는  달콤한 희망을 심어 놓고 노동을 시킵니다. 

이건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희망이라는 정말 실체적이지도 비확실한 것을 종교처럼 신봉하며  긍정이라는 달콤한 설탕을 듬뿍 담아서 자기의 삶을 직시하지 못하고 긍정에 취한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물론 긍정의 힘이 좋은 점도 많지만 과도한 긍정은 우리를 부리는 사용자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두 클론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과 마주치라는 것입니다. 진실은 그냥 보여지는게 아닌 땅 밑에 묻혀 있어서 삽으로 파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마져 안 한다면 우리는 평생 내 노동력 보다 못한 임금을 받고도 감사해 하며 살 것입니다. 

두 클론 달 노동자는 그 진실을 목도 했고 자신들에게 엿먹인 지구인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우리는 지난 구제역 때 많은 소와 돼지를 죽이지도 않고 산채로 묻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그에 대한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이라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죠. 단지 인력부족과 예산 부족으로 치부한다면 그건 너무나 간사한 인간들이고 그 간사함은 우리는 방관했습니다. 

우리가 방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돈 때문이겠죠. 
영화는 시지푸스의 돌을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두 클론의 이야기에서 왜? 내가 돌을 저 언덕위에 올려야해? 라는 물음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달기지라는 시스템을 벗어나므로써 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장난 장거리 통신위성은 사실은 고장난게 아닌 젬머로 방해전파를 발사해서 통신이 안되는 것 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3년동안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살아가던 '샘 벨'이 자신의 어린 딸로 기억되어진 지구에 사는 딸과의 화상통화는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거티라는 로봇이 주주 자본주의에 찌든 루나산업의 지구인보다 더 인간적으로 그려지는 모습.  친구를 위해서라면 회사의 명령도 어기는 거티의 모습에서 작은 희망을 느낍니다. 

영화 더 문은 '던칸 존스' 감독의 영화로 저예산으로 고퀄리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던칸 존스의 아버지는 묘하고 괴상한 복장과 분장을 하기로 유명한 글램 락의 대부 '데이빗 보위'입니다.  그리고 감독 '이사강'의 친구이기도 하고요.

영화 더 문은 SF영화라기 보다는 주주자본주의와 정체성을 통한 인간성에 대한 진중한 물음을 하고 있습니다. 거티의 단순한  스마일 얼굴과 우는 얼굴이 그 어떤 배우의 표정연기보다 뛰어나네요. 오랜만에 보는 괜찮은 영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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