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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락(Yeorrock)' 우주적인 질서의 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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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평론가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 시리즈·17

우주적인 질서의 구도자 '여락(Yeorrock)'


이 달의 젊은 작가 여락은 2006년 9월 6일부터 19일까지 갤러리 온에서 개인전을 갖았다. (02-733-8295) 3년전, 사진비평상 작품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여락에 대하여 당시 작품심사를 맡았던 김승곤 순천대 교수가 추천의 글을 썼다.

글·김승곤 (순천대 교수)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3년 전, 사진비평상 작품부문을 심사할 때였다. 한 개나 또는 여러 개의 구체와 이상한 형상이 그려진 부적 같은 기호들로 구성된 작품이었는데, 얼핏 보아서는 태양계의 행성들을 전자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까 필라멘트가 끊겨서 버려진 백열전구를 근처 어디선가 주어다가 찍은 사진들이라고 했다. 전구 속에 쌓인 흙먼지를 접사해서 프린트한 인화지를 반으로 자르고, 좌우대칭으로 이어 붙여서 만든 치밀한 이미지들은 민속신앙이나 신화에 나오는 듯한 상징적이고 불가사의한 패턴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약한 서정성 같은 것은 그림자도 없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작품들이었는데도 사진이 가진 턱없이 장대한 스케일 감 때문이었을까,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힘을 느끼게 하는 원형의 차가운 형상들을 보면서 맨 먼저 떠올린 단어는 ‘우주’였다. 혼돈스럽고 무기질적인 세계(Universe)와 정연하고 조화롭게 질서 지워진 인간적인 세계(Cosmos)가 공존하는 우주 - 그것은 우리에게 모든 존재와 생명을 끌어안은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의미한다. 질서의 반대개념으로서의 혼돈은 원래는 유동적이고 명료하거나 확정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상태의 혼돈이거나, 그 속에는 질서와 법칙이 내재되어 있다. 김낙균(후에 그는 ‘여락’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은 미세한 먼지가 오랜 시간 유리의 표면에 쌓여서 만들어낸 불규칙한 패턴과 좌우대칭의 작은 구체(球體)의 인위적인 배열을 통해서 그런 우주적인 혼돈과 질서의 메커니즘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종적인 면접심사에서도 극단적으로 말수가 적었던 그는 물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한참 뒤에 본 그의 작품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이번에는 못쓰는 전구가 아니라, 자동차에 깔려 죽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의 시체를 여기 저기 포장도로 위에서 수거해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길을 달리다가 마주쳐도 보통은 눈을 돌려버리는 그런 작은 짐승들의 참혹한 주검들을 차에 싣고 와서 자신의 방에 펼쳐놓은 낡은 이불솜이나 흰 종이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 놓고, 그들이 천천히 부식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극명하게 기록한 것들이다. 무엇이 그에게 짐승의 시체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구더기와 지독한 악취와 생리적인 혐오감과 지루한 시간을 극복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윤회(輪廻)라고 하는 종교적인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땅 위에 내린 비는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강과 바다로 흘러나간다. 태양의 열로 그 물은 하늘로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박테리아, 구더기 같은 미생물과 곤충들은 모든 유기물과 무기물을 분해시키고, 거기서 영양을 취하고 살아간다. 생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생태학적인 삶과 죽음의 순환을 이루며, 어떤 존재도 이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죽어서 썩어가는 동물들의 시체를 집 근처 숲이나 밭으로 들고 나와 종교적인 비의(秘儀)를 주재하는 제사장처럼 주위에 둥그렇게 돌을 쌓고 그 중앙에서 불에 태워 연기를 하늘로 올려 보낸다. 이 화장(火葬)의 의식은 이승에서 고통 받고 더럽혀진 육체를 불로 태워 정화시키고, 육체라고 하는 물질과 형상을 소멸시킴으로써 영혼의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불길이 영혼을 무구(無垢)한 상태로 다시 탄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이 선고되는 순간을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가장 확실한 기준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단 한 번만의 삶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죽고 없어져도 영혼은 살아 있어서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육신에 깃들어 전생(轉生)을 거듭한다고 믿고 있다. 즉,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영원한 소멸과 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행위는 모든 사물들이 구체적인 형상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자 고유한 영혼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생성과 소멸은 인간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어떤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서 질서 지워져 있다고 하는 애니미즘적인 태도에서 나온다. 비록 소재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전작인 「원(圓)」에서 그가 보여준 우주적인 세계와도 일관되게 이어져 있다.
얼마 전, 토탈미술관의 전시장에서 동물들의 주검이 놓여 있었던 자리가 검고 칙칙한 얼룩 형상으로 찍혀 있는 펼쳐진 이불솜이 천정에서부터 바닥까지 몇 겹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는 그의 작품을 보았다. 나는 거기 서서 수만 년 전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동굴벽화는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이미지의 표상이다. 그가 무엇을 그려내건, 그의 관심과 다루고 있는 것은 시간과 우주와 생명의 원리라고 하는 개념적이고 다분히 철학적인 주제들을 깊게 파내려 가는 일이다. 그건 좋다. 하지만 그가 정신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성공한 작가로서 해결해야 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예술 2006년 9월호 68~73쪽
Posted by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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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idealworld.tistory.com BlogIcon 뉴런 2009/07/26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에서 본 사진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네요. 필라멘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