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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정이현의 소설 '소녀시대'와 구역질나는 강남의 삶

by 썬도그 201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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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을 할 때면 이야기 중독자 답게 라디오 소설을 듣습니다. 이번에도 라디오 소설을 스마트폰 팟 캐스트로 다운 받아서 들었습니다. KBS의 '라디오 독서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나 봅니다. 요즘은 라디오도 다운 받아서 듣는 시대라서 언제  어느 주파수에서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다운 받아서 들을 뿐이죠



이번에 다운 받아서 들은 라디오 소설은 '정이현 작가의 소녀시대'입니다. 팟캐스트 프로그램 올리는 분이 오타를 냈고 덕분에 페이스북에 정희현이라고 올렸네요. 

정이현 작가는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드라마로 잘 알려진 소설가입니다. 1972년생으로 불혹의 나이가 되었네요. 하지만 정이현 작가는 어느 누구보다 현실감 있는 글을 잘 씁니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보지도 읽지도 않았지만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단편 묶음집에 실린 '삼풍 백화점'은 큰 충격음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깨알 같다고 할까요? 참 촘촘한 글쓰기와 구어체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녹음해서 활자화 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소설 '소녀시대'는 정이현이 2003년에 쓴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개정 고교 교과서에 실렸고 그 기념으로 라디오에서 성우더빙으로 오디오 소설로 소개 되었습니다. 호기심으로 들어 봤습니다. 우리 때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설과 어떻게 다른게 요즘은 어떤 소설이 교과서에 실리나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구역질이 났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니 이런 구역질 나는 소설을 어떻게 고등학생들이 소화하라고 교과서에 넣은거지? 설마 전문 다 넣은것은 아니겠지 하는 충격속에 미간이 찡그려졌습니다. 이 정도 소설도 이해할만한 아이들인가? 아니 위선적이고 새마을 운동 같은 바른생활 모습만 담은 그래서 교과서에 있는 소설이 지루하고 따분한 도덕 교과서 같은 지난 시절의 국어 교과서의 틀을 깬 것인가 하는 등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소설 '소녀시대'는 걸 그룹 소녀시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소설입니다. 소녀시대가 탄생하기 전에 쓰여진 소설이죠
이 소설이 구역질 나는 이유는 이 소설 속 캐릭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17살 소녀 혜나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집니다. 혜나는 엄마 아빠가 죽었을 때 내가 20살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시작 됩니다. 그 이유는 20살 넘은 사람을 고아라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아주 발칙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혜나는 10대 소녀들이 으레 그렇듯 부모님 욕을 합니다. 

남들은 해외원정 출산까지 하는데 보스턴에서 아빠를 만나서 임신을 하고 기여코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울에 와서 자기를 낳아서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질 수 없었다고 부모님을 비난합니다. 물론 속으로 하는 것이죠

이 소설에서 혜나는 아주 발칙하면서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나옵니다. 영특하다고 해야 할 까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깨달은 듯 하고 삽니다. 여고생이지만 부동산 앞을 지나면서 자기가 사는 아파트가 8억에서 2천만원이 더 오른 것을 생각할 정도입니다. 혜나에게는 꿈이 있는데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좋아하는 오빠 용이에게 포르쉐 자동차를 선물하고 친구 민지에게 오피스텔을 선물하고 자기는 쿨하게 한국을 떠나는게 꿈입니다.

혜나의 아빠는 유학파 교수입니다. 보통사람 깔보는 집안 출신인 아빠, 그러나 돈은 없어서 학력을 철저하게 숨기는 돈 많은  엄마가 사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빠라는 사람은 깜찍이라는 10대 채팅녀와 알콩달콩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사이입니다. 이 모습을 딸 혜나가 비밀번호도 안 걸려 있는 아빠의 음성사서함을 들락거리다 알게 됩니다. 

깜찍이라는 자기 또래의 아이의 귀여운 뿌잉뿌잉 한 음성 메세지에 짜증을 내는 혜나
엄마라는 사람은 대학원은 나왔지만 철저하게 학교 이름은 숨기는 강남 졸부의 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오늘은 요리강습을 배우고 내일은 예술을 배우는  한마디로 아는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있는척 아는척 교양있는 척이란 척은 다 하고 사는 가식덩어리입니다.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자 부모와 딸이 평범하게 사는 듯 하지만 각자의 삶은 구역질 나는 강남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보통의 소설이면 막장 캐릭터가 몇 있어도 바른정신 가진 캐릭터가 한명 있어서 그걸 정리하고 조절하는데 이 소설은 어떻게 된게 모두 막장입니다. 

이 모습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더군요.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혜나는 아빠의 열라 짱나고 졸라 짱나는 깜찍이의 존재를 혼자만 알고 있습니다.
용이오빠는 혜나가 첫 눈에 반한 오빠입니다. 이 용이 오빠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용이 오빠가 혜나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 부탁이란 혜나 엄마의 자동차를 하루만 빌려서 서울 한바퀴를  돈 후에 갖다주는 것 입니다.

이 모습에 혜나는 용이오빠에 실망을 하고 헤어집니다. 
혜나는 꿀꿀한 기분에 친구 민지에게 문자로 채팅을 한 후 압구정에서 쇼핑을 합니다. 쇼핑을 하다가 봉구라는 연예기획사에서 일한다면서 혜나에게 명함을 줍니다.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이죠

나중에 혜나는 그 황봉구라는 대머리 기획사 사장에게 찾아가 포르노 잡지 에 실리는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사진을 찍은 이유는 아빠와 깜찍이 사이에 애가 생겼고 애를 낙태하기 위해서는 수술 비용이 필요한데 이 비용을 벌기 위해서 혜나는 포르노 잡지 사진을 찍습니다. 혜나는 깜찍이에게 연락을 했고 깜찍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아빠에게 알리지 않고 혜나 혼자 해결합니다.

참 기특한건지 어른스러운건지 이 소설 막장으로 흐릅니다. 이 부분은 라디오 소설에 들어가 있지 않고 싹 도려내 버렸네요
저도 검색을 통해서 이 소설에 대한 내용을 찾다가 보니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는 걸 알았습니다.

혜나는 용이오빠에게 선물을 해줄려는지 느닷없이 한껀 하자고 용이 오빠를 만납니다.
그 한껀이란 가짜 인질극입니다. 용이오빠가 자신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혜나네 집에 전화를 하고 자기는 비명소리만 지르기로 합니다. 그렇게  혜나와 용이는  아빠로 부터 500만원을 뜯어냅니다. 

가짜 인질극을 통해서 용이오빠는 포르쉐는 아니지만 작은 오토바이를 얻습니다.
이 소설을 들으면서 이게 소설인지 아니 소설일 수 있지만 고등학생들이 읽을 만한 소설인지 자꾸 묻게 됩니다. 소설은 구어체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감이 뛰어납니다. 진짜 여고생들이 자주 쓰는 단어들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마치 어제 쓴 여고생의 일기장을 길거리에서 주워서 읽느 느낌이죠. 그런데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혜나는 더 이상 20살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떡국 몇 그릇 더 먹었다고 세상이 헤까닥 바뀌지 않는 다는 세상의 이치를 더 깨닫죠. 가뜩이나 나이보다 조숙하고 세상물정을 너무나 잘 알아서 현명해 보이기 까지 한 혜나는 20살도 별볼일 없는 나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17살이나 20살이나 어디가면 여자애 취급받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소녀시대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면 돈벌 껀수는 널렸고 급할때는 울어버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혜나는 아파트 가격이 9억에서 강남부동산투기지역으로 묶으면서 3천만원이 떨어졌다면서 소설을 맺습니다


참 이런 막장 소설도 다 있네요. 등장하는 주조연 모두가 막장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막장 캐릭터들이라고 하기에는 이 모든 캐릭터들이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또한 제가 욕하는 혜나와 엄마 아빠가 악인이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강남 아니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돈의 맛'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상류층들의 구역질 나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담았다고 하네요
강남은 어떻게 보면 비강남인들의 컴플렉스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강남을 저도 여러분들도 손가락질 하고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의 목표는 IN 강남이 아닐까요?

이런 생각을 하니 강남인들이 평균을 담은 이 소설 '소녀시대'가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모습도 오버랩이 되네요

악인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정작 악인이 되고 싶어하는 시기심과 질투심이 제가 더 구역질을 느끼게 했나 봅니다.
강남이라는 욕망덩어리를 소설에 그대로 녹여낸 소설 '소녀시대', 이런 소설을 고등학생이 읽고 공부한다는 자체가 아주 깨네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강남 여고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비 강남 고등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또한 선생들은 어떻게 해석하라고 강요할까요?
구역질 나는 소설. 소녀시대. 그러나 그런 구역질나는 세상에 우리는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아갑니다. 더 구역질 나는 것은 그런 구역질 나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우리안의 구역질 나는 욕망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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