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80년대 나이키, 90년대 GUESS청바지. 2011년 노스페이스라는 계급보호색

by 썬도그 2011. 11. 21.
반응형


어제 본 '돼지의 왕'이 아직도 속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있네요. 너무나 직설적인 이야기.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누구도 감히 알려고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애니 '돼지의 왕'은 담고 있습니다

너는 잉여라고. 너 같은 놈은 더 공부해봐야 알바생활이나 전전하다가 비정규직으로 근근히 먹고 살다 결혼자금도 마련하지 못해 결혼도 못하는 사회적 잉여로 살다가 사라질것이라는 충격적인 그러나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바탕 듣고 나온 기분입니다.

영화에서 돼지들은 잉여들로 묘사됩니다.  개라는 돈있고 공부도 잘해 권력층인 선생들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부류와 성적도 시원찮고 그렇다고 싸움질을 잘 하지 못해서 반에 있는지 없는지 담임마져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존재감 없는 유령같은 존재들중 개들의 놀이개감이 된 부류를  돼지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무존재였습니다. 성적도 뛰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선생 눈에 들어올만한 튀는 행동도 하지 않고 집안도 잘 사는 집안도 아닌 그냥 평범한  교실에 있으나  없는 것 같은 존재였죠

개들이 활개치면 개들의 먹이가 되지 않을까  개들에게 먹히지 않을까 혹은  개들이 괴롭히는 부류인 돼지가 되지 않을까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는 부류였죠. 지금 전국의 초중고에는 이런 개와 돼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개와 돼지의 먹이사슬을 방관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준 돼지들이 있죠. 


계급을 숨기기 위한 시대별 보호색들
 


태어나서 아이는 꺄르르 웃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알지 못한 이 천진한 미소는 자신의 계급의 위치를 깨달으면서 웃음보다는 부끄러움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자신의 집이 다른 친구들의 집보다 가난하다고 알게 된 후 집을 숨기고 사는곳을 숨깁니다. 가난은 창피한게 아니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가난은 부끄럽고 추한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닌데  대역죄를 지은 마냥 집을 숨기고 가난을 숨깁니다.  남과 다르다는 것 그게 평균이하라는 것에 짜증이 납니다. 

아이가 계급의 차이를 느끼게 될때가 바로 애국조회때입니다. 정말 지루한 연설을 하는 애국조회때 아이들은  옆 앞에 있는 아이들의 신발을 보게 됩니다. 햐얀색 바탕에 빨간 립스틱보다 찐한 빨간 나이키 로고가 달린 신발을 신은 여자 반장의 신발을 보면서 그 아이의 계급을 알게 되고 나의 중저가 브랜드를 신은 모습을 창피해 합니다.

아이들은 잘 압니다. 누가 가난한지 부자인지 차려입은것만 보고 판단을 아주 잘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멸시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대놓고 멸시하는 친구는 많지 않죠. 애니 '돼지의 왕'에서 처럼  빨간색 GUESS청바지는 여자꺼라는 (실제로 게스에서는 색깔로 남성 여성 구분이 없다고 함) 이상한 룰을 만들어서 지하셋방에 사는 주인공의 청바지를 가위로 짤라 버립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감독의 실제 경험담이라고 함) 그리고 남자가 여자나 입는 빨간GUESS마크가 달린 청바지를 입었다며 호모새끼라고 놀리죠. 

이렇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 아이들은 계급구분을 합니다. 그리고 끼리끼리 놀죠. 
이런 불이익 즉 못산다는 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리하게 보호색을 입게 됩니다.  시대별 보호색입니다.



80년대 나이키신발

영화 품행제로에서 중필이는 양아치입니다.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는 녀석이죠. 그런데 이 녀석 같은반 공부잘하는 여학생을 좋아합니다.  중필이는 미장원을 하는 엄마랑 살지만  여학생은 부자입니다.  둘은 집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런것 따지고 만날 나이는 아니죠) 연인사이로 발전하는데   중필이가 신고온 신발을 보고 여학생이 한마디하죠

"어! 나이스네"
나이스는 나이키의 짝퉁신발로 80년대 나이키를 신지 못한 학생들이 신고다녔습니다.
실제로 신고 다니는 학생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못살아도  무리해서라도 신발은 나이키 정품으로 사 신는 학생들이 많았으니까요.  나이키는 잘 사는 집안아이라는 신분증 같은 존재였습니다.  

상류층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나타내고 싶은 학생들의 신분상승의 욕구와 계급신분증 역활까지 하던 나이키신발. 80년대의 나이키는 신분증이었습니다.

 
돼지의 왕에서 개라는 권력자들이 돼지 부류인 주인공을 밟을때 선명한 나이키 신발이 너무나 인상적이더군요




 


90년대 게스청바지


동생이 사다준 게스청바지를 입고다녔습니다. 대학시절 이 청바지 몇벌 입고 다녔는데 상당히 고가였습니다. 동생이 싸게 사올 수 있어서 사다 주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빨간색 게스청바지를 입고 다녔던것 같네요

영화 돼지의 왕에서는  빨간색은 여자, 파란색은 남자라는 룰이 있었습니다. 전 그 모습에 진짜? 라고 생각하고 그럼 내가 여자 청바지 입고 다닌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네요.  영화에서 중학교 안의 게스문화를 모르고 비싼 청바지를 입고 간 주인공이 등교길에 친구가 빨간색은 여자꺼라고 하는 지적에 얼굴이 뻘개지면서 상표를 가린 장면이 나옵니다

90년대는 교복 자율화 시대라서 (지금은 교복시대로 회귀했지만) 게스 청바지를 많이 입고 다녔습니다.
게스를 입고 다닌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다는 표식이었고 기를 쓰고 입고 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2011년 교복이 되어버린 노스페이스


참 신기했습니다. 하교길의 여중고등학교 앞에서 본 풍경은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교복이라는 획일적이고 통일된 옷을 입고 나오는 학생들이 마치 단체로 맞춘듯 대부분의 학생이 노스페이스 옷을 덧입고 있었습니다.  아니 노스페이스가 교복인가? 아웃도어 제품인데 학교가 산도 아니고 산행도 여행도 안가는 학생들이 아웃도어 제품을 입는게 웃겼습니다.  개성시대라고 해서 좀 더 달라 보일려고 하는 학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 똑같아 질려고만 하는 모습 무슨  외모의 집단 동기화입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 또한 나이키 신발 그렇게 사 신을려고 하고 게스 청바지 입을려고 했던 지난 시절이 떠올리네요.
저것도 하나의 보호색이죠. 가난을 숨기고  평온한 중산층 이상의 무리속에 숨어 들려갈려는 모습. 이해 못하는 것 아닙니다. 세상이 가난을 추하고 역겨운 것으로 보니 아이들은  그런 가난을 숨기기 위해서 보호색을 입고 있다고 느껴지네요

나와 다른 색을 입고 있으면 따를 바로 당하는 예전보다 더 날서고 무서워진 교실풍경. 이해 못하는 것 아닙니다.
교육이 산으로 가는 이유가 노스페이스만 입는 학생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노스페이스만 입게 하는 우리 어른들이 만든 살풍경이 아닐까요?

노스페이스 비쌉니다. 무려 40,50만원하기도 하는데 
어른이 사입기도 무리가 가는 제품입니다. 



 과시욕이 판치는 한국사회가 만든 풍경


뒷동산 올라가는데 수백만원짜리 고어텍스 제품을 입고 등산하는 사람들이 참 많죠. 그 옷으로 백두산도 아닌 겨우 600미터도 안되는 뒷동산 올라가는데 너무 비싼 제품을 사서 입고 다니죠.  또한 자신의 능력은 무시하고  수백만원짜리 고가의  DSLR를 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수백만원짜리 자전거 사고 겨우 안양천이나 여의도 자전거도로 다니는 분들도 많고요

이런 과시적인 성향을 가진 한국인들이 참 많습니다.
분수에 맞게 사용처에 맞게 사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꼭 보면 필요이상으로 과소비를 하는게 문제고 그런 과시욕이 한국의 명품백 강국으로 만들었죠

3초백, 5초백이라고 합니다. 전 그 말이 뭔가 했습니다.  루이비통과 샤넬백을 3초백 5초백이라고 하는데 3초마다 하나씩 보인다고 해서 3초백, 길거리에서 5초마다 하나씩 볼 수 있다고 해서 5초백이라고 하네요

전 그런 명품백 소비도 과시욕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또한 중고등학교의 노스페이스와 똑 같은 보호색으로 보이고요.
자신의 신분을 자신이 입고 들고 신고 다니는 것으로 나타낼려는 그런 인간의 욕망이 가득한 한국입니다.  또한 그게 아주 잘 먹히니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첨 만날때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과 신고 있는 신발, 차고 있는 시계와 들고 있는 휴대폰등으로 그 사람을 대충 요리해서 판단합니다. 이런 모습이 많으니 아이들이 노스페이스로 위장하고 다녀도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가난이 죄가 아닌데 이상하게 한국은 손가락질을 받는 풍토가 있습니다.
이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과시욕을 뻘쭘하게 만들려면 그걸 우러러 보는 시선 보다는 허세가 심한 사람이라고 오히려 깍아내리는 시선이 더 많아져야겠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네요

지금도 많은 집에서  노스페이스 사달라는 아이와 실강이를 하는 집안들이 많을 것 입니다. 안사주면 학교에서 왕따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엄청난 출혈을 각오하고 사주는 부모님들.  이런 풍토에 노스페이스는 함박 미소를 짓고 있겠네요 10년 후에는 또 어떤 제품이 보호색으로 선택될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