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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긍정적 감정이 인류를 위대하게 만들었다는 행복의 완성

by 썬도그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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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퀄리브리엄'을 보면 감정이 멸종된 아니 강력하게 억제된 디스토피아가 나옵니다.
인류는 3번의 세계대전으로 큰 깨달음을 얻고 변덕스럽고 예측 불허의 감정이라는 존재가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공포심에 감정을 억제하는 세상을 만듭니다. 기쁨, 슬픔, 고독, 절망, 분노, 희망 이런 인간의 감정은 쓰레기로 취급하고 강력한 마취제를 주입시킵니다.

성직자는 감정을 느끼는 무리들을 즉결처단하면서 감정이 사라지고 이성만이 지배한 세상을 이끕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 본성인 감정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붕괴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정의 소중함과 존재이유를 극명하게 들어냈지만 따지고보면 우리는 서서히 이퀄리브리엄이 그리는 이성만이 가득한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특히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이성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며 인간의 감성을 말끔하게 지워버리려고 하죠.

이런 이유로 감정에 대한 연구는 그 긴 과학의 시대를 지나는동안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그나마 인간 머릿속을 추측한 '프로이트'는 사랑이라는 감정 실체에 접근하기보단 기계 냄새나는 '리비도'라는 개념으로 사랑을 정의했죠.
2004년 미국의 중요한 교과서인 '정신으학 종합 교과서'에는 총 50만 줄의 내용 중 테러리즘, 증오, 죄악은 각 100 줄 및 600줄의을 할애했지만 믿음, 연민, 용서, 사랑, 기쁨에는 단 줄도 쓰고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긍정적 감정에서 비롯된다

서점에 가면 행복해 지는 방법,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등 이 책만 읽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책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그런 책을 가끔 뒤적이지만 영 읽고 싶어지지는 않네요. 사람마다 행복의 가치가 다르고 취향도 정의도 다른데 그걸 마치 기계적으로 정량화하고 수치화하고 매뉴얼화하는 자체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 책들의 대부분은 '행복전도사'라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만을 적어놓은 편협한 글쓰기로만 되어 있어서 몇장 넘기다가 맙니다. 또한 TV에서 행복전도사로 활동하는 분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행복전도사'라는 분 마져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 분노와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책 '행복의 완성'은 그런 행복전도사들의 책과 좀 다른 접근으로 행복의 실체를 찾아갑니다.

아니 이 책은 제목만 행복의 완성이지 행복에 대한 지름길을 안내하는 책은 아닙니다. 이전 책들과 다르게 좀 더 과학적인 접근을 한다고 할까요?


저자인 정신과 전문의 '조지 베일런트'는 자신이 이끄는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단 연구에서 세 집단을 연구대상으로 삼습니다. 한 집단은 하버드 남자 대학생 268명, 또 한 집단은 천재아 연구센터인 터민 연구소에서 선정한 천재 여성 90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정한 집단은 청소년 범죄 연구소인 글루엑 연구소에서 선정한 고교 중퇴뒤에 자수성가한 남성 456명입니다.

총 810명을 표본으로 그들의 삶을 수십년간 관찰한 결과를 가지고 이 책을 적고 있습니다. 이전 책들보다는 좀 더 과학적인 접근이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기존에 잘 다루지 않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중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아주 밀도 있고 심도 높게 다룹니다. 너무 심도가 높다 보니 책이 좀 뻑뻑하다는 느낌이 있긴 합니다

 

 긍정적 감정이 인류를 구원하고 진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들었다

항상 즐거운 사람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욕을 해도 웃는  바보들이 있죠. 이 분들은 인지력이 떨어져서 자신을 공격해도 그게 공격인지도 모르고 웃습니다. 그래서 '바보는 항상 즐거워'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노홍철 류의 인지력은 멀쩡하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입니다.
전 이 노홍철을 보고 있으면 이젠 웃음부터 나옵니다. 웃음의 전염성은 둘째 치고라도  이 노긍정이라는 노홍철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행운이 곁에 있습니다.  확률적으로는 다를 것 같지 않지만 스스로 '러키가이'라는 말을 하듯 그는 행운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책 '행복의 완성'은  이런 긍정적인 감정인  사랑, 희망, 기쁨, 용서, 연민(자비), 믿음에 대한 깨알 같은 분석과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런 긍정적인 감정이 어떻게 인류를 진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들었으면 포식자로부터 이길 수 있는지에 ㄷ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 포유류가 파충류보다 뛰어난 것은 변연계라는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부분이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파충류는 이 부분이 뇌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인간은 얼굴 표정으로 그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하죠.  개가 우리 곁에서 반려동물이 된 이유도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긍정적이어서가 아닐까요?

개 치고 천성적으로 까칠한 개는 없고 일반적으로 개는 친화력이 아주 뛰어난 동물입니다.
이게 다 개가 가진 천성적인 긍정적인 태도와 감정들 때문이 아닐까요?

태어나자마자 걷지 못하고 뛰지 못하는 인류는 천성적으로 누군가의 보살핌이라는 사랑을 받지 못하면 죽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포식자가  다가오면  이기적인 파충류처럼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버리면 후손은 멸종하겠죠. 하지만 인간은 자기도 위험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아기를 안고 뛰기 시작합니다.  나약한 인류는  이타심을 필연적으로 발달시켰고 그 이타심은 이기적인 포식자들을 물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사랑과 연민, 용서, 믿음, 기쁨, 희망이 어떻게 인류를 생존경쟁에서 이겨내게 하며 인류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떠올려도 욕부터 나오는 살인마들은 대부분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저는 이런 괴물들을 만들어내는게 어린시절 사랑과 긍정적인 감정을 받지 못하고 절망과 분노, 괴로움과 외로움을 주식으로 지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불우한 사람은 살인마가 되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어린시절을 봅니다.

 

톰 머튼은 황폐한 유년기와 우울한 성년기를 보냈다. 젊었을 때 머튼은 성인 발달 연구에 참여한 대학생 268명 중 성격 안정성을 나타내는 테스트에서 최하위를 차지한 8인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머튼의 유년기는 나머지 7명의 유년기보다 훨씬 더 황폐했다.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다른 7명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인생에 실패했다.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75세 이전에 죽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신체불구가 되었다. 이와 극히 대조적으로 톰 머튼은 80세까지 활기차고 행복하게 살아 있었고, 게다가 경쟁이 치열한 운동인 스쿼시를 즐기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무엇이 그를 구원했을까? 혹은 누가 그를 구원했을까? 

책  행복의 완성 중 일부 발췌 

 

책 '행복의 완성'에서는 불우한 환경에서 절망만을 희망처럼 생각하고 산 톰 머튼을 구원한 것은 긍정적인 감정과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 부정적 감정도 존재가치가 있죠. 포식자가 다가오는데 살인마가 다가오는데 긍정적으로 그 순간을 맞이하면 죽음과 대면하게 됩니다. 공포감과 두려움은 우리에게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되고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위기를 벗어나게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 감정은 보다 긴 미래를 볼 수 있는 치료제입니다. 부정적 감정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일 때는 필요할 수 있으나 긴 시간을 본다면 부정적 감정보다는 긍정적 감정이 큰 도움이 됩니다.


잘못된 믿음은 파멸을 이끈다

"영적 공감을 추구하는 집단들이 왜 그렇게 자주 짐승처럼 잔인한 제도를 만들어낼까요?"
모든 종교 전통에 대한 질문이지만 그 답은 동일하다. 투사가 공감을 대체할 때 잔인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공동체를 추구하기보다 통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종교는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는 교훈을 잊는다.  전체주의와 이기적인 지배욕이 이타적 사랑을 대신한다.

책 '행복의 완성'중 일부 발췌 

 

이 책중에서 관심이 가장 갔던 부분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긍정적인 감정이라지만  잘못된 믿음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상대를 파괴하면서도 그게 신의 지시였다는 믿음, 즉 잘못된 믿음이 우리 인류를 얼마나 많이 괴롭히고 파멸로 이끌었는지 역사는 조용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대부분의 전쟁은 종교 때문이었습니다. 수백만의 이슬람교도를 죽인 가톨릭의 수장이
영웅으로 칭송받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종교전쟁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포함)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전쟁으로 이끌었을까요? 자신의 종교를 설파해야 한다며 지금도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를 하는 기독교 분들을 보면 그게 과연 올바른 믿음인지 아집인지   긍정의 감정으로 위장한 분노인지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이 책은 그런 잘못된 믿음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담겨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믿음, 미성숙한 믿음이 상대를 고려하지 못한다고 지적을 하고 있죠.

 

오늘날의 미국,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신명기의 살인적인 유대율법, 가톨릭교회의 이단 심문소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 다수'의 편협한 믿음은 종교적 신앙을 행하고 사랑이 넘치는 세계를 신뢰하는 수십억 보통 사람들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권력을 좇는 이기적인 특징을 보인다. 

책 '행복의 완성'중 일부 발췌 

 

인류가 위대한 이유는 도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책은 2부로 넘어가서 긍정적 감정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인류가 긍정적 감정으로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패와 실수를 통해 배운 지식은 인류를 진화시켰고 실수를 긍정적 감정으로 녹여내지 못했다면
우리 인류는 지식을 쌓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다른 동물보다 머리크기가 크기 때문에 위대하며, 긍정적 감정을 통한 문화적 진화와 도덕성이 인류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15세기나 16세기에 뚝하고 떨어진다면 세상은 도덕적이지 않고 비상식적이고 이성적이지 않다고 말하겠죠. 그때는 도덕성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보다는 권력자의 생각대로 세상이 움직였으니까요.

UN이라는 연합체를 만들어낸 인류 물론 그 힘이 미약하다고 하지만 인류는 긍정을 바탕으로 한 교류를 통해서 발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기심보다는 이타적인 모습이 인류를 앞으로 전진하게 합니다.


좀 생소한 책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실체화하고 구체화하고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책이기에 좀 낯선 면이 있지만 이 책이 말하는 긍정에 대한 찬양은 이 노 교수가 자식세대인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같이 보입니다. 나이 드신 아버지가 어린 손주에게

"내가 살아보니까 긍정적인 감정들이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 같네요
그렇다고 이 책이 부정적인 감정을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애벌레와 나비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듯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질타의 책은 아닙니다. 반대로 맹목적 긍정에 대한 주의사항도 잘 담고 있고요

책이 솔직히 술술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죠.
현미경으로 세상을 볼 때는 부정적으로 광각렌즈로 크게 볼때는 긍정적으로 보는 혜안을 하나 얻게 되네요.

긍정적 감정에 대한 신선하고 세밀한 접근법이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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